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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다자] 전력 60분 - 우산

*2020년 9월 27일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옮기며 문장 수정이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가끔 한 번씩 뻔한 핑계가 필요해질 때가 있다. 낮에 빠진 강에 현관 열쇠를 흘려 잃어버렸다던가, 일이 늦게 끝나서 돌아가는 차편이 마땅치 않았다던가. 그리고 오늘은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아주 뻔한 이유였다. 물에 닿으면 녹는 설탕 인형도 아니고 이 정도 비쯤이야 맞으면서 돌아가도 상관은 없었지만, 하나뿐인 코트가 비에 젖는 것은 역시 싫었다. 아무리 외모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해도 아침부터 덜 마른 코트를 입고 출근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뭐, 이런 것도 우산을 새로 산다면 해결이 될 문제였지만 다자이 본인이 굳이 새 우산을 사야 할 필요와 이유 ..

[츄다자] 전력 60분 - 간접 키스

*2020년 7월 25일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옮기며 문장 수정이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항공사 기장 컨셉으로 나왔던 일러스트를 보고 썼었던 글입니다! 장거리 비행은 오랜만인 것 같은데. 츄야는 면세 구역에 깔린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에 구두가 닿는 경쾌한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움직일 비행기가 세워져 있을 탑승구를 향해 나아갔다. 오늘 비행은 열 몇 시간을 목적지까지 한 번에 쉬지 않고 가는 직항 노선이었기 때문에, 출발 전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아 평소보다 조금 일찍 공항에 나왔다. 머릿속으로 오늘 만날 팀원들에게 지시할 사항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걷던 도중, 갑자기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어왔다. “아, 츄야~.” “어어.” 손을 흔들면서 긴 다리로 성큼성큼 츄야를 향해 걸어오..

[츄다자]전력 60분 - 인어

거대한 크루즈선은 흔들림 하나 없이 바다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출항한다. 강하게 부는 바닷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신기하게도 같은 바다라도 요코하마와는 전혀 다른 냄새가 난다.천천히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보다가 쯧, 혀를 차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옆에 삐딱하게 앉은 츄야가 담배를 꺼내려다 전면 금연 구역인 것을 깨닫고 다시 집어넣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갑판 일부에 마련된 야외 테라스에 츄야와 둘이 나란히 앉아 이렇게 선상 여행을 하게 된 이유는, 휴가나 농땡이 같은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일 때문이었다.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카탈로그를 집어 든 다자이는 지루한 듯이 꼬아 앉은 다리를 까딱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기에서 열리는 경매에 인어가 출품된다나 봐.” “아~? 그런 게 ..

[츄다자] 전력 60분 - 애정표현

* 5월 16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분명 처음 시작은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다자이는 집무실에 있는 접객용 소파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눈앞에 있는 일거리에 눈을 돌리고 이렇게 딴생각에 빠지게 된 건, 조금 전 다자이와는 다른 업무를 배정받고 밖으로 나간 츄야 때문이다.정확히 말하자면, 오늘까지 이것들을 확인하라는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설렁설렁 서류를 보고 있던 다자이에게 츄야가, 소파의 등받이 뒤에서 고개를 숙여 그 입가에 자신의 입술을 꾹 누르고는 도망치듯 방 밖을 나갔기 때문이었다.다자이는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끼게 된 건 저번에 얼결에 서로 키스 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물론 그 사고―츄야에겐 사고지만 다자이에게는 의도..

[츄다자] 전력 60분 - 야경

* 3월 28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인적이 드문 거리의 가라앉은 새벽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다. 집에서 입고 뒹구는 나시 위에 얇은 후드 집업 하나만 걸쳐도 전혀 쌀쌀하지 않은 걸 보니 요새 날이 확실히 많이 풀렸나보다. 다자이놈은 보기 드물게 기운 넘치는 모습으로 횡단보도의 흰 선만을 밟으면서 성큼성큼 저 앞으로 앞질러 나간다. 츄야가 느릿느릿 횡단보도를 반쯤 건너왔을 때쯤 신호등의 파란 불빛이 급하게 깜박이고 있었지만, 어차피 도로에 차도 사람도 없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츄우야― 너무 느려.” “늦게 간다고 거기 있는 게 없어지진 않을 거 아냐.” “그건 그렇지만, 빨리 가서 보고 싶어.” 빨간불이 된 횡단보도의 너머에 다자이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불만을 토로한다...

[츄다자] 전력 60분 - 꽃다발

* 3월 22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미쳤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초조하게 반복되던 전화의 발신음이 끊기자마자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다자이가 그렇게 외친 건, 방금 있던 일을 보면 당연했다. *** 점심을 먹고 식곤증으로 조금 나른해질 시각. 사무실 안에 떠도는 공기도,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도 노곤노곤했다. 쿠니키다의 열렬한 타자 소리 마저도 자장가의 리듬으로 들릴 만큼 탐정사는 나른함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무실에 갑자기, 꽃배달이 왔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빨간 장미 꽃다발이. 그것도 다자이 오사무 앞으로 말이다. “다자이!!! 네놈 또 탐정사에 문란한 것을 반입하고! 너란 놈은 대체…!!” “에엥? 쿠니키다군, 장미의 어디가 문란한 것인지 좀 말해줄래? ..

[츄다자] 전력 60분 - 무릎베개

* 3월 14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비스트(BEAST) 설정 주의! 포트마피아 최상층, 수령의 집무실. 그곳은 어둠을 일부러 붙잡아 가둬둔 듯한 공간이었다. 요코하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이 있지만, 외부의 빛 한줌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지는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그대신 인공적인 불빛이 드문드문 방안을 어슴푸레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을 전부 몰아내기엔 너무나도 역부족이다. 그 집무실의 한 가운데, 어둠이 바닥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책상에서 현 수령 다자이 오사무는 서류를 읽고 있었다. 몇 시간째 앉아 있었는지는 모른다. 무언가에 쫓기듯 일을 할 뿐이었으니까. 다자이는 이제 짙은 색 책상과 흰 종이와의 강한 색대비에 눈이 시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무심코 어두운 ..

[츄다자] 전력 60분 - 색깔

* 19년 12월 21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츄야~ 빨강이랑 파랑, 둘 중 어느 색이 좋아?” “아?” “해제 못 할 구조는 아니지만… 역시 시간이 부족해. 마지막 선이 뭔지 모르겠다구.” 행운의 여신은 과연 우리에게 손을 들어줄까? 다자이가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빙글빙글 돌리면서 후후 웃었다.이거 또라이새끼 아닌가. 까딱하다가는 죽을 심각한 상황을 눈앞에 둔 놈답지 않은 가벼움에 츄야는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게 바로 다자이 오사무니까.하품이 날 정도로 간단한 임무에 모리가 츄야와 다자이 둘을 보낸 데에 역시 티끌만큼의 의심이라도 해야 했다. 물론 의심했어도 명령이니 따랐겠지만.보스. 이런 폭탄이 있을 거라고는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냥 폭탄도 아닌 생화학병기가 부..

[츄다자] 전력 60분 - 시선

1301호. 문 옆에 붙어있는 금속 플레이트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숫자를 흘끔 본 츄야는 코트 안쪽 주머니에 들어있던 카드 키를 꺼냈다. 문 손잡이에 가져다 대자 녹색 불빛이 가볍게 깜박인다. 무거운 문을 밀어 열고 들어서면, 바로 앞에 보이는 창으로 요코하마의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도심 방향으로 난 창문이라 관람차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낸 빛무리들은 충분히 눈이 부시게, 하지만 거슬리지 않게 반짝이고 있었다.커다란 창문에 어울리는 적당히 커다란 방. 그 가운데에 있는 마찬가지로 커다란 침대에 츄야를 이곳에 부른 장본인인 다자이가 잠든 것처럼 누워있었다. 새하얀 시트 위에 코트도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길쭉한 몸. 호흡으로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가슴이 자고 있는 것..

[츄다자] 전력 60분 - 버릇

* 11월 2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지?!” 눈을 뜨자마자 들리는 고함에 안 그래도 멍멍한 귀가 더 아파져 왔다. 시선을 돌리면 멀쩡히 형태를 갖추지 않은 더미들 사이에 유일하게 멀쩡해 보이는 츄야가 있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면 위에 쌓여있던 돌가루와 모래 먼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피어나는 먼지에 콜록거리며 뻑뻑해진 눈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듯 비볐다. “이렇게, 콜록, 죽을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냐?” 입을 열자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 아, 아~~~. 입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재미있어서 키득키득 웃는다. 기절해 있던 사이에 돌가루가 잔뜩 들어간 먼지를 너무 많이 들이마셔서 이럴지도 모르겠다.멍한 머릿속에서 아까 자신이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