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전력60분

[츄다자]전력 60분 - 인어

라덕 2020. 7. 4. 23:22

거대한 크루즈선은 흔들림 하나 없이 바다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출항한다. 강하게 부는 바닷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신기하게도 같은 바다라도 요코하마와는 전혀 다른 냄새가 난다.

천천히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보다가 쯧, 혀를 차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옆에 삐딱하게 앉은 츄야가 담배를 꺼내려다 전면 금연 구역인 것을 깨닫고 다시 집어넣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갑판 일부에 마련된 야외 테라스에 츄야와 둘이 나란히 앉아 이렇게 선상 여행을 하게 된 이유는, 휴가나 농땡이 같은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일 때문이었다.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카탈로그를 집어 든 다자이는 지루한 듯이 꼬아 앉은 다리를 까딱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기에서 열리는 경매에 인어가 출품된다나 봐.”


“아~?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


“있을 수도 있지? 우리 같은 이능력자도 있는 마당에.”


그리고 츄야처럼 만들어진 이능력자도 있잖아, 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굳이 쓸데없는 말을 해서 일하기 전부터 기분을 끌어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흥미가 있으면 네놈이 입찰해보던가.”


“에엥~. 흥미 없어.”


다자이가 경매 목록이 나온 카탈로그를 대충 파락파락 넘기면서 말한다. 하나같이 비싸고 진귀한 물건들뿐이지만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희박한 다자이로써는 화려하게 컷팅된 보석도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비슷한 정도의 감상만 들 뿐이었다.


“이번 타겟은 그게 아닌걸. 게다가 나는 물속에서 같이 죽어줄 아름다운 여성이 필요한 거지, 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 줄 여성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필요 없어.”


“허, 웃기지도 않는다. 쓰레기 같은 새끼.”


“후후, 칭찬 고마워.”


다자이는 츄야를 향해 그림으로 그린듯한 예쁜 웃음을 가식적으로 지어 보이고는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애초에 츄야와 다자이의 타겟은 이곳에서 출품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경매에 참석하는 사람이지. 조심성도 겁도 많은 타겟은 엔간한 일엔 쉽게 머리를 들이밀지 않더니, 이번 경매엔 얼굴을 비쳤다. 덕분에 이렇게 동반 크루즈 여행길이다. 귀찮게 만든 만큼 조금 불만을 담아서 처리해볼까. 어차피 타겟과 같은 배 안, 그쪽은 이제 도망도 못 가는 독 안에 든 쥐 상태니까.

카탈로그의 맨 마지막은 ??? 라는 표시와 함께 사진도 개시되어 있지 않은 페이지가 나왔다. 이게 바로 그 소문의 인어인가 보군. 클라이맥스 경매품이라니 신경 쓴 티가 많이 났다.


“있지, 경매에 나올 인어가 진짜일지 가짜일지 내기해볼래?”


다자이가 카탈로그에 인쇄된 금박을 손톱으로 긁으면서 빙긋 웃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웃음에 다 마신 모히토의 빨대를 잘근잘근 씹고 있던 츄야가 싫다는 듯 인상을 쓴다. 다자이가 이렇게 웃을 때는 항상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가짜 쪽에 걸래.”


“어라, 나도 가짜 쪽인데.”


“뭐? 이러면 내기가 안 되잖아. 방금까지 있을 수도 운운하면서 긍정적이던 놈은 어디로 갔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웃기지도 않는다며 아직 입도 안 댄 다자이 몫의 모히토를 츄야가 손을 뻗어서 날름 가져간다. 뭐, 어차피 마실 생각은 없었으니까 아쉬울 것도 없긴 했다.


“그래서, 작전 내용은? 나 네놈한테 들은 게 없다고.”


타겟의 정보만 전해 들은 츄야는 낮은 목소리로 다자이에게 물음을 던진다. 조금 일 모드가 섞인 음색에 다자이는 기분 좋은 듯 후후 웃는다.


“작전이랄게 있나. 내가 타겟에게 다가가 협상을 하다가 안 되면 츄야가 짠, 한다는 아주 심플한 방법이지.”


“심플은 개뿔. 네놈만 아니었으면 최악의 경우 헤엄쳐서 탈출한다는 선택지도 없었을걸?”


“같이 배를 탄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예상했을거 아냐? 새삼스럽기는.”


하기야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에서 헤엄쳐 탈출한다는 것은 중력 조작으로 쉽게 날아다닐 수 있는 츄야에겐 참으로 쓸데없고 무의미한 짓일테다. 하지만 그걸 알아도 다자이 오사무라는 짐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동료이자 파트너이니까.


“네놈이랑 동반자살은 질색이야.”


“유감이네~ 나도 그렇거든.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 마, 파트너.”


자신을 곧게 바라보는 츄야를 지긋이 마주 보다가 츄야의 머리카락 색과 수평선과 하늘의 컨트라스트에 눈이 부셔서 다자이는 결국 눈을 가늘게 뜨고는 시선을 피했다

지나가는 서버에게 이번엔 마실 생각으로 탄산수를 한잔 부탁하고, 그 물거품 사이로 만나지 못한, 그리고 만날 일도 없을 수조 속의 인어를 아주 잠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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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다자 전력 60분 / 주제 : 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