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전력60분

[츄다자] 전력 60분 - 야경

라덕 2020. 7. 2. 23:39

* 3월 28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인적이 드문 거리의 가라앉은 새벽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다. 집에서 입고 뒹구는 나시 위에 얇은 후드 집업 하나만 걸쳐도 전혀 쌀쌀하지 않은 걸 보니 요새 날이 확실히 많이 풀렸나보다. 

다자이놈은 보기 드물게 기운 넘치는 모습으로 횡단보도의 흰 선만을 밟으면서 성큼성큼 저 앞으로 앞질러 나간다. 츄야가 느릿느릿 횡단보도를 반쯤 건너왔을 때쯤 신호등의 파란 불빛이 급하게 깜박이고 있었지만, 어차피 도로에 차도 사람도 없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츄우야― 너무 느려.”


“늦게 간다고 거기 있는 게 없어지진 않을 거 아냐.”


“그건 그렇지만, 빨리 가서 보고 싶어.”

 

빨간불이 된 횡단보도의 너머에 다자이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불만을 토로한다. 덕분에 다자이가 걸치고 있는 헐렁한 카디건이 어깨에서 흘러내릴 것 같다. 

네에네에, 어련하시겠어요. 츄야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요즘 계속 날씨도 좋아서인가, 깨끗하게 갠 하늘에 간만에 별이 잘 보인다. 달도 잘 보일 게 분명하건만 어디 건물이나 나무에 가려져서 안 보이는 것 같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뭐 사가는 게 나은가?”


“으으음~ 그럼, 오랜만에 맥주 살까?”


아니면 컵으로 된 소주나 정종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츄야의 옆에서 나란히 걷다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자이가 히히 웃는다. 조금 귀엽다고 느끼는 이것도 새벽 공기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이 어중간한 새벽 시간에 둘이 사이좋게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이유는, 늦게 자신의 세이프 하우스로 돌아온 츄야를 보자마자 난데없이 꽃구경을 가자고 달려든 다자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끄럽다고 귀찮고 피곤하니 나는 가지 않는다, 가려면 네놈 혼자 가라고 버틴 츄야 때문이고.


“결국에 이렇게 될 거였으면 좀 더 빨리 나왔으면 좋았잖아~.”


“시끄러워. 네놈의 집념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으니까.”


“하지마안― 낮에 지나가면서 봤을 때 오늘 꽃이 제일 예쁠 게 분명했단 말이야. 오늘이 지나고 그 모습을 영영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아깝고 슬프잖아.”


“아, 그러셔.”


도중에 환한 불빛을 뿜으며 우뚝 서 있던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과 푸딩 하나, 담배 한 갑을 사고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츄야는 무심코 담배를 뜯어 한 개비를 꺼냈다가 다시 안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공기에 담배 연기가 섞이는 건 어쩐지 아까웠기 때문이다.

말없이 앞으로 걷다 보면 중간중간 보이던 옅은 분홍색이 어느새 주변에 만연해졌다. 듬성듬성 서 있는 가로등의 흰 불빛과 벚꽃의 연분홍, 밤하늘의 짙은 남색의 대비가 시선이 닿는 어디든 그 공간을 가득 채워놓고 있었다.

막상 나와서 활짝 핀 꽃의 부드러운 색을 보니 확실히 기분이 들뜬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보이는지 츄야를 보면서 다자이가 실실 웃고 있다.

아, 저 표정은 확실히 기분 나쁜데. 인상을 쓰는 츄야를 보며 다자이가 더 짙게 웃어주고는 손을 팔랑팔랑 흔들면서 츄야를 부른다.


“이쯤이 좋을 것 같아.”


적당히 평평한 흙바닥에 조심성 없이 털썩 앉는 다자이의 옆에 츄야도 앉아, 들고 온 봉지 안의 맥주를 다자이에게 건넨다. 서로 자연스레 캔의 입구를 파칵 열고 물 흐르듯 짠, 캔을 맞부딪친다. 그리고는 둘 다 이 상황이 웃겨서 맥주를 입에 가져다 대면서 낄낄 웃었다.


“아~ 역시 밤의 벚꽃은 좋은 술안주가 되는 게 맞는 것 같아.”


“오? 푸딩 안 먹을 거면 내가 먹는다?”


“엥, 누가 안 먹는대?”


너무하네~ 남의 푸딩을 먹으려 들다니. 극악무도해. 역시 마피아는 이래서 안 돼. 

투덜거리면서 맥주를 마시는 다자이놈이 어째 별로 아쉬워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한 입 달라고 하면 또 저렇게 굴면서도 줄 것 같았다. 

평소라면 생각지도 못할, 놀라울 정도로 폭신폭신한 시간에 둘러싸여서 멍하니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쳐다본다. 

그래, 지금 이 시간을 색으로 표현 한다면 저 색이랑 비슷할지도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달이 활짝 핀 벚꽃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오늘 뜬 달은 웃는 것처럼 예쁘게 휘어진 초승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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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다자 전력 60분 / 주제 :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