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전력60분

[츄다자] 전력 60분 - 시선

라덕 2020. 2. 1. 23:51

1301호. 

문 옆에 붙어있는 금속 플레이트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숫자를 흘끔 본 츄야는 코트 안쪽 주머니에 들어있던 카드 키를 꺼냈다. 문 손잡이에 가져다 대자 녹색 불빛이 가볍게 깜박인다. 

무거운 문을 밀어 열고 들어서면, 바로 앞에 보이는 창으로 요코하마의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도심 방향으로 난 창문이라 관람차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낸 빛무리들은 충분히 눈이 부시게, 하지만 거슬리지 않게 반짝이고 있었다.

커다란 창문에 어울리는 적당히 커다란 방. 그 가운데에 있는 마찬가지로 커다란 침대에 츄야를 이곳에 부른 장본인인 다자이가 잠든 것처럼 누워있었다. 새하얀 시트 위에 코트도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길쭉한 몸. 호흡으로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가슴이 자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사람을 불러놓고 태평하게 누워있냐. 

츄야가 기척을 죽이지 않고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아도 다자이의 감긴 눈은 뜨여지지 않았다. 출렁임이 거의 없는 매트리스에 내심 감탄하며 츄야는 한쪽 손을 다자이의 얼굴 옆에 두고 그 얼굴을 내려다본다. 

얼굴을 며칠 만에 마주하는 거지. 머릿속으로 가만 돌이켜보니 3주가 좀 넘은 것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그만큼 만에 마주하는 얼굴이었다. 감긴 눈 아래는 피로 때문인지 조금 검었고, 속눈썹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창백한 뺨에 그늘을 만들었다. 턱선이 조금 날카로워졌을지도 모르겠다. 다자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츄야는 전혀 모르니, 좀 고생할만한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다자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던 츄야는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이 방에 들어온 지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 예민한 놈이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문이 열리는 작은 소리만 나도 잠에서 깨던 다자이를 츄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대로 단정한 이마에 츄야 자신의 이마를 툭 마주 대면 그 반동처럼 다자이의 감긴 눈이 반짝 떠진다. 마주한 시선에는 예상했던 대로 잠기운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묻어있지 않았다. 그것에 빈정대듯 말이 나온다.

“깨어있으면 인사라도 해.”

“츄야도 차암~. 이럴 땐 모르는 척 키스라도 해줘야지. 눈치 없기는.”

시선으로 얼굴이 간질간질할 정도였어도 꾹 참고 가만히 있었는데. 헉, 혹시 줘도 못 먹는 타입?

이마를 마주한 채로 시끄럽게 투덜거리는 입을 원하는 대로 덮으면 다자이가 코로 뱉는 숨으로 웃음기가 느껴졌다. 기쁜 듯도 하고, 만족스러운 듯도 한 그런 웃음. 가볍게 다자이의 아랫입술만 빨고 떨어지려 하면 그러지 못하게 목에 팔이 감겨서, 츄야는 어쩔 수 없이 깊게 키스를 해주고서야 고개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무슨 일로 불렀냐? 그것도 이런 식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츄야가 주차장에서 본 것은 자신의 차 와이퍼에 끼워져 있던 하얀 봉투였다. 호수가 적힌 봉투 안에는 한 장의 카드키가 들어있었을 뿐이었다. 츄야에게 대담하게 이런 짓을 할 놈은 단 하나뿐이라 무시할까 하다가 왔더니 다짜고짜 입술부터 부벼대는 데엔 좀 어이가 없어진다.

“뭐어― 일이랄게 있나? 그냥 가끔은 이런 데에서 츄야랑 늘어져 있고 싶었을 뿐이야.”

그럴 리가. 

츄야 눈에는 아무리 봐도 어딘가 꿍꿍이속이 있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미간을 구기고 아래에 있는 얼굴을 노려보면, 다자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츄야의 허리에 긴 다리를 휘적 감고 꼬리뼈 부근을 발뒤꿈치로 살살 문지른다.

이렇게 대놓고 치댈 일이 없는데. 점점 더 수상하고 생각하면 이제 팔로 목을 끌어안고 볼에 볼을 비벼댄다.

“…야.”

“으응?”

“내가 오늘 돌아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냐?”

“음~ 글쎄에 어떨까아.”

정답인 모양이다. 

“아, 좀.”

귓바퀴를 입술만으로 덥석 무는 감각에 진저리치면서 다자이를 떨쳐내고 쳐다보면 생각하는 척 눈을 굴리더니 후후, 웃는다.

“미리 미안하다고 할게.”

“미리 미아안?”

“음~ 아마 츄야가 마음에 들어 하는 세이프 하우스는 오늘 저녁에 최소 유리창은 없어질 것 같아서.”

“최소 유리차앙?”

이 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게 말이지~ 개인적인 일이라 되도록 혼자 해결하고 싶었는데.”

다자이의 입 밖에 나온 것은 어쩐지 억울하다는 듯, 이런 일이 생겨서 짜증이 난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혼자 움직이기 힘들어서 쌍흑의 이름을 팔았어. 해체되고 따로 활동한 지는 4년이나 지났지만 이름의 위력은 의외로 아직 유효하니까.”

다자이의 말의 결론은 탐정사의 의뢰가 아닌 일로 정보를 알아보다가 깨끗하게 걸려버렸다는 단순한 이야기. 그런데 왜 내 세이프 하우스가 위험한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런 거라면 내가 집에 있었어도 상관없잖아.”

츄야는 걸어오는 싸움은 거절하지 않는다. 게다가 개인적인 장소에 대한 습격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피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싫어. 이래 보여도 평화주의자인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언제 평화주의자 뜻이 바뀌었냐?”

빈정대듯 말하면 후후후, 하고 다자이가 손으로 더듬어 츄야의 크로스 타이를 벗겨낸다.

“여하튼, 그렇게 됐으니까 오늘은 여기에 있어.”

츄야가 야릇하게 웃는 다자이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바로 앞에서 눈을 마주하면서도 다자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눈이 지금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명백히 한 가지밖에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후우. 츄야는 한숨을 짧게 쉬고 혀를 빼어 다자이의 눈가를 핥았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것은 역시 기분이 썩 좋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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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다자 전력 60분 / 주제 :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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