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단편

[츄다자] 불면

라덕 2017. 5. 27. 01:11

“......츄야. 왜 여기 있어? 오늘 휴가였잖아.”


“아? 네놈이야말로 왜 여기 있냐?”


노크도 없이 벌컥 열린 문에 서류를 읽고 있던 츄야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예의 없이 구는 놈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딱 한 놈밖에 없다. 자신의 파트너이자 최근 유력한 간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다자이 오사무. 눈앞에 있는 저놈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분명 다자이는 지금 본부에 있을 리가 없는 상태였다. 간부로서의 역량을 시험해 보는 것처럼 최근 여기저기에서 굴려지고 있던 다자이는, 나흘전에 홀로 출장에 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 정말 짜증나. 서로 안 맞는 사람이랑 파트너를 만들어놓고 쌍흑이니 뭐니 하면서 별명까지 붙여놓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제 와서 찢어놓는건 또 뭐냔 말이야.’


최근 둘이 함께 하지 못하는 임무가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번엔 아예 다른 지역으로 보내지는 명령이 내려왔었다. 그것에 불만을 표하던 다자이는 떠나기 전까지 츄야의 등 뒤에 새끼 코알라처럼 달라붙어 가기 싫음을 온몸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어디서 어리광이냐며 떼놓고 발로 차도 모자랄 지경이었으나, 어리광을 부리는 본인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츄야는 한숨만 내쉬었다. 

이걸 달래지 못하면 모두가 좆된다. 그런 생각을 담아 나름대로 달래주자, 우후후 웃으면서 더 몰캉하게 늘러붙어 버릴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진작 발로 찰 걸 그랬다고 조금 많이 후회했지만 이미 글러버린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밤새 물렁하게 만들어 놨어도 떠날 즈음엔 다시 신경이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져, 건드리기만 해도 예민하게 굴었었기 때문에 이놈과 함께 떠나는 부하들한테 마음속으로 애도를 표했음도 당연했다.

그렇게 보내고 나흘 만에 본 다자이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눈은 피곤에 안쪽으로 푹 꺼져 있고, 입술은 파삭하게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 이 얼굴을 보면 누구든 저 놈을 당장 의무실 침대에 눕히고 싶어하리라. 그 퀭한 얼굴을 가만 보던 츄야는 결국 얼굴을 와작 구겼다. 설마하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분명 츄야가 기억하고 있던 다자이의 출장 일정은 ‘최소’ 일주일이었다.


“야, 네놈 설마 또 못 잤냐?”


“응...”


비척비척 방안으로 걸어 들어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다자이가 아구구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매번 자살자살 노래를 부르면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니 전혀 안 그렇게 보이지만, 다자이는 예민한 편이었다. 모든 일에 예민하게 구는 것은 아니고 신경 쓸 일이 생기면 잠자리를 가리는 버릇이 있었다. 이번에 처리하고 온 일이 생각보다 꽤 귀찮은 일이었나 보지. 아마 전혀 잘 수 없는 뭣 같은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왔을테다. 이렇게 예민한 상사 밑에서 같이 혹사당했을 부하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나중에 모아 술이라도 사줘야겠다고 머리 한구석으로 생각했다. 본인만 생각하는 사회성 없는 간부님은 부하들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을테니 말이다.


“보스한테 보고하고 바로 츄야한테 가려고 했더니만 오늘 출근했다고 들었지 뭐야... 미리 전해 듣고 헛걸음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아아,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고 호출 받았거든. 생각보다 금방 끝났지만.”


늙은이처럼 계속 앓는 소리를 내다가 결국 소파에 모로 눕는 다자이를 흘큿 보곤 츄야는 다시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최근 다자이에게 여러 가지 일이 가듯 파트너인 츄야에게도 무작위로 일이 들어오고 있던 중이었다. 신체적인 면으론 마피아 내에서 한손에 꼽을 정도의 실력인 것을 모두 알고 있었으니 늘어난 것은 서류 업무의 비중이다. 사무직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적성에 안 맞는다. 몸이 찌뿌둥한 기분이 들어 괜히 크게 기지개를 켰다. 이렇게 며칠 동안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좀이 쑤시는 게 당연한 일인 것이다.


“츄우야―.”


“안돼.”


“뭐야?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뭔진 모르겠지만 여튼 안돼.”


뭐야아, 츄야 치사해, 바보, 꼬마, 모자걸이 주제에. 다자이가 작게 입을 삐죽거리면서 볼에 바람을 불어넣고 실컷 저주하듯 중얼댄다. 물론 츄야는 코웃음치면서 그런 말들을 흘려들을 뿐이지만.

마음껏 흥흥거리면서 불평 해대던 다자이가 츄야를 빤히 바라보는 기척이 느껴진다. 츄야는 모른척 계속해서 서류에 눈을 떨어트렸다. 사실 츄야는 다자이가 왜 굳이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알면서도 무시하고 하고 있는 중이었다. 딱히 괴롭힘 같은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저놈을 상대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츄우야아아~.”


아, 왜 자꾸 부르냐. 짜증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리자, 다자이가 소파에 누운 채로 한쪽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가만히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그대로 손을 팔랑팔랑 흔든다. 대체 저놈은 또 뭘 하자고 저러고 있는 거야?


“......여기 와서 손만이라도 잡아주면...안 될까...?”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채로 작게 들리는 목소리만은 이미 간절함을 넘어섰다. 이 정도로 대놓고 힘들어하는건 또 오랜만인데. 보고 있던 서류와 다자이를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쉬면서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쪽의 사무직이 급격히 많아진 것은 다자이의 출장도 원인이 있으니까, 본인이 돌아왔으니 조금은 한숨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소파 옆으로 가서 서자, 늘어져 있던 다자이에게서 갑자기 뻗어 나온 손에 와락 허리를 끌어 안겼다. 허리에 감기는 팔과 손아귀엔 웬일로 놈 답지 않게 힘이 꽉 들어가 있다.


“아, 미친...왜 이래?!”


“어차피~ 손을 잡으나 허리를 잡으나 그게 그거니까~.”


“아, 쫌! 이거의 어디가 그게 그거라고 생각 하는 건데!”


허리를 끌어안긴 츄야는 어쩔 수 없이 다자이가 끌어당기는 대로 소파에 풀썩 앉았다. 끌려오지 않으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여기까지 온 상태에서 이미 그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츄야의 배 쪽으로 향하고 있던 다자이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 마시더니, 갑자기 배에 마구 얼굴을 부벼대기 시작했다.


“야,야,야, 너 뭐하냐?!?!”


이놈이 잠을 못 자더니 더 맛이 갔나?!! 안그래도 나사 빠진 놈인데?!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한 츄야를 아는지 모르는지 다자이는 츄야의 배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웅얼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츄야 주제에.....복근이 이렇게나...말랑한 면은 하나도 없고... 담배 냄새도 이렇게 나고오......”


“오냐, 그래서 불만이냐?”


“우후후후......”


대답대신 작게 웃는 소리가 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스으스으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 허. 순식간에 잠든 모양새에 헛웃음이 난다. 누가 보면 자는 척을 한다 생각할 정도의 속도다. 그와 동시에 피곤함의 정도가 보이는 것 같아 입안이 썼다. 

신기하게도 다자이는 어릴 때부터 머리 회전이 일정 수준을 뛰어넘었을 때 꼭 잠을 자지 못하곤 했었다. 과부하 상태의 몸이 보내는 신호인 것일까. 그럴 때면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츄야의 방에 찾아왔다. 서로 손을 잡고 침대에 누워 투닥거리다 보면 어느샌가 잠들어 있어서, 다음날 아침이면 다자이는 꽤 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래도 자신에게 찾아오는 걸음을 멈춘 적은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불면의 밤을 해결하기 위해, 다자이는 매번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결국 츄야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래, 오늘처럼 말이다.

정말 미동도 없이 조용히 잔다. 자는게 아니라 사실은 드디어 이놈이 바라던 대로 죽은게 아닐까.

입가에 손등을 가까이 대보자 미약하게 숨이 닿는다. 간질하게 닿는 숨결에 가슴 안쪽도 간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예쁘게 떨어지는 속눈썹의 그림자를 가만히 보다가 눈 아래에 드리워진 검은 자국을 지워보려 하듯 엄지로 슥슥 문대봤다. 안 그래도 안 자는 놈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식욕도 없었을 테니 밥도 제대로 안 먹었겠지. 이대로 계속 재울 수는 없으니 몇 시간만 두고 뭔가 먹으러 가볼까. 한 손으론 다자이의 어깨를 가볍게 도닥이면서 남은 한 손으론 예약을 위해 휴대전화를 만지다가, 이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어 츄야는 다시 허 하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