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단편

[츄다자] Auberge de la saison : 夏

라덕 2017. 12. 31. 23:21


* 율라피(@wiya_Ra)님과의 사계 테마 트윈합작 「계절의 여관」입니다.

* 다자이 생일 때 썼던 조각글 중 하나에 살을 붙인 글.


<다른계절>

* 봄 https://rawi-pon.postype.com/post/1329543 (w.율라피)

* 가을 http://right-dayo.tistory.com/15 (w.라덕)

* 겨울 https://rawi-pon.postype.com/post/1329637 (w.율라피)





 톡. 토독.

 창문에 계속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에 잠의 바다에 잠겨있던 의식이 떠오른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 비가 오는 모양이다.

 으으응-.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시트의 감촉이 좋아 볼을 부비면서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면, 저절로 흐흥 하고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비 오는 아침 보송한 이불 속에 있는 것만큼 기분 좋은 것은 없지. 이대로 있으면 다시 잠들 것 같은데…. 잠이 잔뜩 묻은 눈동자로 천장을 보면서 눈을 가만히 깜박였다. 비는 역시 집안에서 보고 듣는 게 제일 좋아.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멍한 머릿속으로 생각이 몽글 떠오른다.

 그 순간, 갑자기 침대의 한쪽이 기울면서 작게 출렁였다.



“일어 났냐?”



 기척도 없이 어느새 옆으로 와 앉은 츄야는, 바깥의 차가운 비 냄새와 애용하는 담배 냄새를 묻히고 있었다.



“담배 폈어? 냄새나.”



“아, 그래?”



 많이 날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소매 부분을 들어 냄새를 맡는 츄야가 바보 같아서 좀 웃음이 났다. 담배 핀 사람이 자기 냄새를 알 리가 없잖아, 바보 아냐? 속으로 생각하면서 웃는데 눈을 뾰족하게 한 츄야에게 볼을 꼬집혔다. 아,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게로군. 볼을 부풀려 그 손가락을 밀어내자 츄야가 혀를 차면서 손을 치웠다.



“이제 그만 밍기적 거리고 씻으러나 가라.”



“싫어…. 귀찮아….”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웅얼거리자 몸에 둘둘 말고 있던 이불을 빼앗겼다. 아아, 정말 너무하지 않나. 츄야는 너무 매정하고 야박해.



“오늘은 보스가 오전 중 보고를 명령하셨었으니까.”



 불만이 가득 담긴 눈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원망의 대상은 자기가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리고 조금 전처럼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츄야는 갑자기 내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리더니 동그랗게 드러난 이마 위에 쪽 하고 소리가 나게 뽀뽀를 했다. 남아 있던 잠의 잔재가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츄야를 바라보자 내 얼굴을 마주 보면서 씨익 웃는다.



“생일 축하한다. 다자이.”


 


***


 


“왜 사람들은 태어나는 것에 집착하는 걸까.”



 발소리도 흡수할 만큼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복도를 묵묵히 걸어가고 있던 와중, 마음속에 있던 불만이 툭 튀어나왔다. 오늘은 왜 이렇게 속에 있는 말이 쉽게 입술 밖을 비집고 나오는 걸까. 

 우울하게 비가 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생일이어서 그런 것인지. 복합적으로 짜증이 나니 정확하게 뭐가 원인인지도 잘 모르겠다. 정말 최악이야.


 오늘 아침, 츄야의 갑작스러운 축하에 나른하고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었다. 생일 자체를 잊고 있던 다자이로썬, 그것을 인식시켜준 츄야를 그대로 두고 은신처를 나와버릴 만큼 기분이 상하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생일이란 「지금 네가 이만큼이나 또 살아남았단다.」 라고 눈앞에서 확인시켜주는 날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전 중 와달라는 명령대로 보고를 위해 혼자 수령을 만나러 간 조금 전도 그렇다. 왜 츄야군과 함께 오지 않았느냐 묻는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무시하며 보고를 잇자, 의아한 듯 눈을 깜박이던 모리는 곧 싸우기라도 했냐며 가볍게 웃었다. 그러곤 내밀어진 작은 상자 하나.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자 생일 축하하네, 다자이군, 이라는 나직한 말과 함께 손안에 상자가 놓였다. 입술 사이로 비집어져 나올 것 같은 한숨을 삼키고 예의상 바로 열어보자 보이는 것은 작은 넥타이핀이었다. 물론 가격은 크기에 비례하진 않겠지. 조도가 낮은 방의 불빛이 부딪혀 잘게 빛을 뿌리는 이것은 큐빅 따위가 아닌 고가의 것일 테고 말이다.



“카탈로그를 보는데 다자이군에게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무심코 사버렸지 뭔가. 우리 귀여운 엘리스의 의견도 들어가 있다구~?”



“감사합니다. 예쁘네요.”



 겉치레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감사의 미소로 화답해주자 이만 가봐도 괜찮다는 만족스러움이 묻어난 답이 돌아왔다. 흐뭇하게 웃는 모리를 뒤로 하고 방을 나오자마자 다자이는 그것을 옆에 서 있던 부하에게 넘겼다.



“이거, 대신 좀 버려주게.”



 그렇게 말하던 자신의 표정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건네받던 부하가 뻣뻣하게 굳어있던 것을 보면 아마 좋은 표정은 아니었겠지.

 분명 모리도 다자이의 이런 행동들을 이미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다자이를 보고 있었으니 분명 얼마나 생일이라는 날 자체를 싫어하는지 알 테다. 그러니 이건 단순히 괴롭힘 그 이상도 되지 않는다. 

 이건 츄야도 마찬가지다. 오늘 하루는 주위의 모두가 자신을 빙 둘러싸고 손가락질하며 놀려대기 위해 존재하는 날 같다.


 생각하고 있자니 반사적으로 미간이 와작 구겨진다. 아, 역시 이런 날은 일하는 거 아니야. 루팡의 영업시간이 되기 전까지 어딘가에 늘어져 자살 방법 연구나 하는게 무엇보다도 보람찰 것 같아.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흩트리며 생각을 뻗어나간다.

 그리고 오다사쿠한테, 아무것도 묻지 말고, 잔뜩 위로해 달라고 할 거야. 상냥한 나의 친우는 원하는 대로 또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위로하면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이 망할 하루가 끝날 때까지 내 곁에 함께 있어주겠지. 그걸로 충분해. 그리 생각하면서 성큼성큼 건물 안을 걷던 다자이는, 현관 앞에 다다라서야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지금 비 오잖아.


 아침부터 내리고 있던 비는 쉽게 그칠 것이 아니었다. 아까 본부에 올 때는 수행원을 데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곁에 아무도 없다. 입술을 짓씹으면서 내리는 비를 다시 바라본다. 

 아~~~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는 날이야. 사람을 부르는 것도,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다자이는 그대로, 세차게 내리는 빗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돌아보는 회색빛 도시는 비로 뿌옇게 번져, 평소와는 다르게 진한 색을 한 겹 덧바르고 있었다. 물을 잔뜩 머금고 몸에 달라붙어 오는 옷이 기분 나쁘다. 어깨에 걸치고 있는 코트가 특히 무거워, 흐느적거리며 걷다 결국 우뚝 걸음을 멈췄다. 한걸음도 더는 걷고 싶지 않을 만큼 모든 의욕이 내리는 비와 함께 사라져간다. 아아,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자체도 너무 귀찮아서 다 던져버리고 싶어. 그대로 고개를 들어 올려 회색 하늘을 보자 빗물이 여과 없이 눈 안으로 들어와, 계속 눈을 깜박이게 된다. 따끔거리고 귀찮아 눈을 비비고 있자니 마치 멸망한 세상에 나 혼자만 남아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와아, 최악이네. 세상에서 단 하나만 남은 생존자라니. 그것만큼 절망적인 상황은 없겠지.


 아냐, 사실 그렇게 되면 이 목숨을 없애는 데에 좀 더 주저 없어질 것 같기도 하고.


 곰곰이 생각에 더 빠지려는 순간, 갑자기 옆에서 자동차의 날카로운 클랙슨 소리가 났다. 움찔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그 자리엔 까만 광택을 가진 날렵하게 생긴 차가 서 있었다.


 아, 츄야 차다.


 그렇게 인지함과 동시에 운전석 쪽 창문이 내려가면서 츄야의 얼굴이 보였다. 차 안으로 들이치는 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츄야의 미간엔 주름이 가 있었다. 뭐, 아마 높은 확률로 나 때문이겠지.



“야, 병신같이 가만히 서서 뭐하냐.”



“보면 몰라? 비 맞잖아.”



“허, 누가 그걸 모르냐? 왜 그러고 있는지를 묻는 거잖아.”



“으응~ 오늘이란 날이 너무 엿 같아서?”



 빗물에 잠긴 목소리가 튀어나와 비와 함께 떨어져 내린다. 이 몸도 비와 함께 녹아 사라져 버리면 좋을 텐데. 조금씩 녹아들어 가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그땐 조금은 즐겁지 않을까?



“신경 끄고 그냥 갈 길 가지그래?”



“네놈은, 내가 뭣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 알면서, 잘도 그딴 식으로 말한다?”



 매사 항상 그런 식이지. 으르렁거리면서 날 노려보던 츄야가 결국 차에서 내려 다가온다. 내가 순순히 따라올 생각이 없단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테다. 검은 우산을 쓴 츄야가 천천히 내 앞에 선다. 자신보다 키가 큰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기 위해 츄야의 한쪽 어깨는 필연적으로 점점 젖어들어 갔지만 그런 것 따위 크게 개의치 않는 그 모습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그 손을 쳐버렸다. 우산은 별다른 저항 없이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가 탁한 물웅덩이 사이를 굴러다닌다.


 아하,아하하하!!!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워 배를 잡고 크게 웃어버렸다. 어차피 비는 다 맞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람. 앞머리를 타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괜히 짜증이 나,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리면서 푸후 웃었다. 쉼 없이 내리는 빗줄기에 츄야도 빠르게 색이 덧칠되어 짙어져 간다. 아끼는 모자가 물에 젖는 것 만큼 싫은 것은 없을 텐데 잘도 가만히 서 있네.



“…뭐가 또 이렇게 심통이 났냐, 시발 새끼야.”



“아까 말했잖아, 츄야. 너무 멍청해서 사람이 말한 것도 기억 못 해?”



 까득. 모자의 챙 아래로 이를 악무는 턱 언저리가 보였다. 아, 이러다가 한 대 치겠는걸. 

 사실 진즉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까부터 츄야의 성질을 긁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울 건 없었다. 오히려 다자이 입장에선 여태까지 참고 있던 츄야가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순식간에 와락 멱살을 잡혔을 땐 드디어 인가 싶어서 실실 웃음이 났다. 최악의 날엔 최악의 전개가 어울리는 게 당연하잖아. 부디 피날레를 부탁해, 츄야.


 그렇지만 와 닿는 건 화끈하게 내리꽂히는 주먹이 아니라 차갑게 식은 자신과 대비되는 뜨거운 입술이었다.



“어? 츄…음, 아.”



 놀라 벌려진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뜨거운 혀에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입안으로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열덩어리에 차갑게 식은 몸이 부들 떨려, 나도 모르게 츄야의 어깨를 꾹 잡았다.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시선을 헤매다 마주친 츄야의 눈은, 안쪽에 흉흉함을 그대로 갈무리한, 그렇지만 내가 생각 하는 것을 전부 다 안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반사적으로 몸 안쪽이 지끈 저리기 시작한 것은 정말 내 몸이라도 혐오스러울 정도다. 거침없이 입안을 휘젓고 혀뿌리를 휘감는 혀가, 조심스럽게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는 손가락이, 전부 조금씩 차근히 몸 안의 열을 지피고 있었다.


 빗소리에도 감춰지지 않는 질척한 소리에 결국 참지 못하고 츄야의 어깨를 강하게 밀자 뜻밖에도 순순히 뒤로 물러선다. 예상치 못한 깊은 키스에 무릎이 후들거린다. 고작 키스하나에 이렇게 되다니 내 몸인데도 기분 나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최대한 힘을 주고 서서 빗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젖어버린 입술을 손등으로 덮었다. 

 짜증나. 바보 츄야의 열이 옮아서 여기만 뜨거워졌어.



“하, 정말이지~. 우리 간부님은 손이 많이 가는 놈이라니까~.”



 츄야의 과장섞인 한탄과 한숨 소리가 들린다. 보통 때라면 거기에 얄밉게 대꾸를 해줬겠지만, 나에겐 옅게 웃으면서 서 있을 기력 정도 밖에 남지 않아, 결국 거칠게 손목을 붙잡혀 조수석에 던져지다시피 타게 됐다. 뒤이어 운전석에 탄 츄야는 망설임 없이 차를 출발시킨다. 나를 닥치게 하고 차에 태운다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해서겠지. 츄야의 취향대로 잘빠진 차체는 덜컹거림도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가 정말 쉬지 않고 온다. 차창에 불규칙하게 부딪히는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기 시작해, 시트에 둥글게 웅크린 몸을 깊숙이 묻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츄야는 혀를 쯧 차곤 기어를 바꾼다.



“츄우야아….”



“왜.”



“나 너무 춥고 졸려…….”



 대꾸 없이 손을 뻗어 머리를 툭 한번 치고 간 츄야는 차 안의 히터를 약하게 켜곤 다시 운전에 집중한다. 질척하게 젖은 몸이 비싼 가죽 시트를 망치는데도 츄야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다. 너는 대체 내 어리광을 어디까지 받아줄 셈이야? 그 상냥함이 나를 좀 더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너는 알까.



“…츄야는 변태야? 내가 이렇게 하는데도 왜 계속 옆에 있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비에 지친 몸과 뾰족뾰족 날카로워진 신경은 따뜻하고 안정된 곳으로 오자 풀어지기 시작했다. 비에 뭉그러진 풍경처럼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의 끝에, 나직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린다.



“네놈이 그러길 바라기 때문인 게 당연하잖아.”



 난 이래서 네가 너무 싫어, 츄야.




***


 


 츄야는 사실 아침부터 좀 난감한 상태였다. 물론 자신을 이렇게 만드는 원인은 손에 꼽을 정도고, 그 팔 할 이상은 빌어먹을 파트너인 다자이 오사무와 관련되어 있었다.

 고요한 차안에선 앞유리가 창문을 긁는 와이퍼 소리와 작은 숨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렸다 사라져 간다. 옆좌석에 몸을 웅크리고 잠든 다자이를 보면서 츄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놈이랑 같이 있으면서 늘어나는 것은 한숨뿐인 것 같다. 비에 젖어 척척하게 들러붙는 옷가지들이 기분 나쁘고 불편할 텐데도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 저건 그냥 정신을 놓은 거다. 아침부터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신경이 순식간에 풀려버린게지.  

 저놈은 항상 뭘 저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매사 단순하게 생각 해버릇 하는 츄야로써는 다자이를 보고 있으면 쓸데없이 복잡한 놈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가끔 꼬아서 생각하는 다자이를 보다못해 한마디씩 툭툭 던지면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한 표정이 돌아왔지만 답답해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크게 싸우고, 작전 때가 아니면 대화조차 안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왜 함께 있느냐는 물음 밖에 나오지 않는 사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의 긴장이 풀리고 숨 쉬는 것이 편하게 되는 관계도 있는 법이었다. 서로 그것을 인식할 때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붐빌 시간을 넘겨 정체되지 않는 도로를 지나 맨션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채로 몇 분. 차의 움직임이 멈췄는데도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는 얼굴을 가만 보다가 내려 조수석 쪽 문을 열었다. 괜히 깨우지 말고 그대로 들쳐업고 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어깨에 손을 대자마자 다자이가 파드득 몸을 떨면서 눈을 번쩍 떴다. 마주친 눈동자 안쪽에 옅게 어려있던 잠기운이 순식간에 가시고 날카롭게 경계의 빛이 떠오르는 게 보인다.



“츄야?”



“아- 미안.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 나쁜 짓을 많이 하네.”



 이것 봐, 나 소름 돋았어. 양팔을 쓸면서 진저리치는 놈을 무시하곤 하려던 그대로 안아 들었다. 말씨름하다 보면 끝이 없을 테니 우선 장소나 옮기자 싶었기 때문이었다. 차갑게 식은 가는 몸이 별다른 저항 없이 품 안으로 들어온다.



“우와아, 공주님안기...? 날 부끄럽게 해서 죽일 셈인가?”



“어차피 이 시간엔 아무도 안 지나가. 고까우면 네 스스로 걷던가.”



 살풍경할 정도로 깨끗한 고급 맨션의 지하주차장엔 인기척은커녕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 어중간한 시간에 돌아다닐 만한 사람들이 사는 건물이 아닌 것이다. 



“후후, 이상하게 몸에 힘이 안 들어가네에.... 짜증 나게도 말야.”



 누구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바로 사람 살려요~, 납치범이에요~ 소리 질러버릴 거야. 떨어지지 않게 목에 양팔을 감으면서 귀에 속닥거리는 소리에 대답 대신 코웃음을 쳤다.

 목을 감고 있던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면서 츄야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괜히 부비작거리는게 느껴진다.



“정말이지. 왜 사람들은 탄생과 죽음에 집착하는 걸까.”



“허, 이 세상 누구보다 죽음에 집착하는 놈이 무슨.”



 어이없음을 담아 답하자 자기가 생각해도 웃겼는지 귓가에 작게 웃는 숨소리가 들렸다 사라진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데도 내려달란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젠 지쳤다기보단 그냥 걷기 귀찮은 모양이다. 이놈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말이다.



“으응, 그치마안 난 탄생엔 집착하진 않는다구. 아, 물론 츄야한테 기일 따위를 챙겨달란 얘긴 아니니까 오해는 말아?”



“오해는 무슨. 누가 그딴 걸 챙길 것 같냐.”



 태어난 것에 대해서 그렇게 기뻐하고 싶지 않은 놈이니 매년 오는 생일이 달갑지 않은 것 또한 당연하다. 포트 마피아의 보스, 모리 오가이는 생일이 아니라도 다자이에게 언제나 무언가를 잔뜩 안겨주곤 했다. 아마 그 나름의 애정표현이겠지. 하지만 의도가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다자이는 선물 대부분을 뜯어보지도 않은 상태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고 옆에서 보고 있으면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소유주가 그리하고 싶다는 데에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었기에 그대로 내버려 뒀다.


 다자이는 자신의 생일이 있는 이 계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유를 물으니 이 시기는 장마철이라 비도 많이 와서 눅눅하고, 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습기가 잔뜩이라 물속에 있는 게 나을 정도인데 봄이나 여름 어느쪽으로도 정의하기 힘드니 정말 애매한 계절이야, 라는 푸념 섞인 대답이 돌아왔던게 어렴풋이 기억났다.

 애매한 계절. 

 그래. 이 말이 이 시기와 이 시기를 지내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제일 적당한 말이라 츄야는 생각했다.


 

*



“목욕하고 싶어.”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다자이가 그 말만 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다. 어쩌라고 하는 마음을 담아서 쳐다보자 이어 들리는 한숨.



“이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민달팽이가 된 거야? 같이 하고 싶단 얘기야.”



 답지 않게 부끄럽기라도 한지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는 다자이를 보면서 노골적으로 어필하는 것에 따라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귀찮으니 그냥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노파심에 물어보겠는데. 씻기만 하고 끝낼 수 있냐?”



“어머, 츄야 변태!”



“하, 누가 누구 보고.”

 


 과장되게 팔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듯 끌어안으면서 변태라 외쳐대는 다자이를 무시하고 드레스룸에 들어가 여벌의 져지와 새 속옷, 수건을 가지고 나오자 다자이가 여전히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보였다. 

 또 왜 저러고 있어. 정신머리는 전부 빗속에다가 두고 왔나. 

 나카하라 츄야에게 있어 다자이오사무는 항상 귀찮은 존재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귀찮은 것 같다. 생일이라는 특수성 때문인걸까. 욕실 앞에서 손을 까딱이자 그제서야 다가온다.



“옷 벗어놔.”



 세탁 바구니를 손으로 가리키고─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이놈에게는 매번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자쿠지의 물 온도를 설정해둔 후 목욕 준비를 했다. 이렇게 된 거 조금 빠르지만 기분 전환으로 이걸 써볼까. 평소와 다르게 나는 부스럭 소리에 무슨일인가 고개를 빼고 옆으로 오는 놈은 붕대까지 다 벗어놓고 온 나체 상태다. 시선 끝에 하얗게 보이는 몸을 무시하고 손에 쥐고 있던 둥근 물체를 차오르기 시작한 욕조 안으로 퐁당 던져 넣는다.

 넣자마자 물속에서 스르르 풀려나가는 구체형 바스 밤. 파란색의 그것은 빙글빙글 돌면서 욕조 안을 제 색으로 물들여나가고 있었다. 물 속으로 점점 짙게 퍼져나가는 밤하늘을 닮은 색에 츄야자신도 . 하는 감탄사를 내보냈다.



“우와, 이거 뭐야? 입욕제? 엄청 신기하다. 짙은 남색에서 뭐가 계속 반짝거리는 게 꼭 밤하늘 같아.”



“이거 네놈 생일 선물이야.”



“어?”



“너 목욕하는 거 좋아하잖냐.”



 뭔가를 주면 그대로 버려버릴 것 같으니까 그때 쓰고 없앨만한 걸 주자 싶어 고민하던 중 우연히 부하에게 이걸 선물 받았다. 둥그런 형태의, 풀리면서 신기한 색으로 물을 물들이는 입욕제. 구매처를 물어보고 고민도 않고 비누 냄새 나는 가게 안에 들어가, 알록달록한 그것들을 전부 사왔다.


 그렇게나 물속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은 계절이라면, 원하는 만큼 물속에 들어가 있어. 

 그런 생각을 담아 사온 내 의도는, 그냥 모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저기 잔─뜩 사놨으니까 쓰고 싶은 대로 써라.”



“전부 똑같은 거야?”



“다 달라. 종류별로 쓸어왔으니 나중에 재미있어 보이는 것부터 써보던가.”



 물속에서 반짝이는 금가루들처럼 다자이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선 기분은 확실히 아까보다 좋아진 모양이다. 이런 데에서 어린애 같기는.

 조심스럽게 욕조에 들어간 다자이가 손으로 파랗게 반짝이는 물을 휘젓고 쥐어보며 신기해하는 동안, 츄야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으면서 샤워기와 샴푸를 집어 들었다.



“뭐야~ 난 분명 같이 씻자고 그랬는데.”



“이 몸이 누군가를 씻겨주는 일은 잘 없으니까 닥치고 수발이나 처받으시죠, 간부님?”



“상사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람. 아, 나 샴푸 해줄 거면 두피 마사지도 해줘.”



“이때다 싶어 부려먹을 생각 만만인 주제에 말이 많아. 야, 다자이.”



 따끈한 탕 안에 들어가서인지 몸에 혈색이 발긋하게 올라 조금 보기 좋아진 다자이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츄야는 진심의 말을, 다시 한 번 전했다. 이번에야말로 좀 제대로 닿길 바라면서.



“생일 축하한다. 앞으론 좀 작작 날뛰어줘라, 파트너.”



“아…….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으음…선물 고마워, 파트너.”



 눈을 굴리면서 생각하다 마주 웃어주는 다자이는 여전히 푹 젖어 있었지만, 더는 추워 보이지도 외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츄야는 우선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면서 그 말간 얼굴에 다시한번 키스를 남겼다.






*

그 여름, 유월.

비가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