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단편

[츄다자/조각글] 여름감기

라덕 2017. 8. 31. 21:48

*트위터 쪽에 올렸었던 조각글. 여름 감기에 호되게 걸려서 츄야한테 골골대는 다자이가 보고 싶었을 뿐인 글입니다.



목이 마르다. 

 갈증에 눈을 뜨자마자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이는 흰색 천장이 빙글빙글 돌며 나를 덮쳐왔다. 덕분에 밀려오는 어지럼증을 견디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다시 내려 감는다. 손끝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 만큼 온몸이 무겁고 나른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미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감기나 그 비슷한 무언가겠지.

 몸의 이상은 츄야와 마지막으로 임무를 다녀왔던 그날, 강에 한번 들어갔다 돌아왔던 저녁부터 느꼈었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그리고─ 바보 같게도 그 결과가 이거다. 누구씨가 보면 엄청 놀리겠지. 분명 스스로 침대에 몸을 둔 기억은 없는데 언제부터 누워 있었던 걸까. 더운 숨을 내뱉는 목구멍이 바싹 말라 빡빡하고 아프다.

 

“깼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움칠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안심하라는 듯 조심스레 머리 위로 와닿는 손이 익숙하다. 

 아, 츄야다.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 손바닥에 무의식적으로 볼을 부볐다. 평소엔 츄야의 체온이 훨씬 높은데 이 손이 시원하다고 느껴질 정도라면 대체 어느 정도로 열이 오른 걸까. 덕분에 머릿속이 이렇게나 멍한 것도 이해가 된다.

 

“열이 쉽게 내릴 생각을 안하네.”

 

 앞머리를 쓸어넘겨주며 이마의 해열 시트를 새것으로 붙여주는 츄야가 이상할 정도로 다정해서, 어째선지 어린애처럼 소리 내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츄야는 나와는 다르게 가끔씩 이렇게 자신의 영역 안의 약해진 것들에게 쉽게 관대해지곤 했다. 상냥한 츄야, 다정한 츄야, 츄야, 츄우야.

 

“엉?”

 

 마음속으로만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온 모양이다. 똑바로 눈을 맞춰오는 곧은 얼굴에 입을 꾹 다물면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인지 되묻지 않는 츄야는 내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준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의 감촉이 좋을 리가 없을 텐데도 아랑곳 않는 손길에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감았다. 

 평소라면 개 취급하지 말라며 냉랭하게 뿌리쳤을 이 손길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몸이 약해지면서 마음도 느슨해졌기 때문일 테다. 열 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몸은 다른 이의 체온을 계속 바라고 있었다. 참으로 모순적이지. 하지만 기분 좋아. 나 사실은 츄야가 쓰다듬어주는 거 좋아해. 많이 좋아해. 이 말은 제발 지금 입 밖으로 나가지 않길.

 

“그러니까, 매번 말하잖냐. 아무리 날이 덥다고 해도 강에 빠진 후엔 몸을 잘 닦으라고 말이야. 알겠냐?”

 

 채근하는 말은 언제나와 똑같지만 말투는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부드러웠다. 열을 재고 있는 츄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시선을 느꼈는지 체온계를 털면서 시원하게 웃어 보인다.

 

“다행히도 아까보단 열이 조금 떨어졌네.”

 

 딱히 의미를 가지고 쳐다본 것은 아니었는데. 답으로 안심한듯한 목소리가 돌아오자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울렸다.


“뭔가 먹을 수 있겠어? 복숭아를 좀 갈아놨는데.”


 말과 동시에 숟가락에 뭉그러진 복숭아를 조금 올려 내미는 것에 무심코 입을 벌렸다가, 한입 받아먹고 헛구역질을 하며 물렸다. 단맛이 혀를, 입안 전체를, 나아가 뇌 속까지 저리게 만든다.

 

“...못 먹겠어. 토할 것 같아.”

 

“그럼 물만이라도 마시자.”

 

 흐물한 몸을 달래듯 쓰다듬어주면서 입가에 컵까지 대주는 행동에 순순히 목을 축였다. 꼴깍꼴깍, 차가운 액체가 몸 안으로 들어오자 잘게 소름이 일어난다. 목울대가 움직이는 느낌조차도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불쾌했지만 덕분에 갈증은 조금 가셨다. 하지만.

 입가에 묻어나온 물기를 닦아주는 손가락을 슬며시 끌어 깍지를 끼듯 맞잡았다. 나와는 달리 마디가 도드라지는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깨물어 굴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그 손등에 입술을 부볐다. 

 당황으로 조금 크게 뜨인 눈동자를 피하지 않으며 열에 들뜬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이 혀 위에 계속해서 느껴지는 단맛은 복숭아의 단맛이 맞는 걸까, 아니라면 이 단맛은 어디서 온 무엇일까.

 마주하는 눈동자 안쪽에서 피어오르는 다른 종류의 열을 발견하곤, 혀로 천천히 입술을 핥았다.

 

 갈증이 다시 심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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