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전력60분 27

[츄다자] 살아온 흔적

아, 이건 좀 생각보다 깊게 찔렸는데.발을 뗄 때마다 옆구리에서 조금씩 울컥울컥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상처를 보고 심하면 꿰매야 할지도 모르겠는걸. 발걸음을 최대한 빨리하면서 츄야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오랜만의 기습 공격이었다. 게다가 꽤 괜찮은 상대였지. 방금 전의 싸움을 생각하니 다시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에 츄야는 히죽 웃었다. 이능력이 아닌 순수하게 몸만을 써서 상대한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사실 그래서 이런 상처를 달게 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움 자체에 후회는 없었다. 너덜너덜해지고 피투성이가 되는 싸움을 계속 해나가는 것은 자신이 언제나 바라던 바였으니까.지친 몸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근처에 자신이 사놓은 은신처가 하나 있다는 것 정도일까. 많이 사용하는 장소는 아니..

[츄다자] 꽃은 피고 지고, 다시 피고

너의 몸에 피어나는 붉은 문양들은 한 무리의 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빨간 꽃들이 너를 전부 집어삼키기 전에, 내가 너를 구해줄게. “이제 쉬게나, 츄야.” 이 세상에서 너를 완벽하게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니까.비록 네가 들으면 자만이라 웃어넘길지라도. 오탁이 해제되고 뻗어버린 츄야의 옆에 옷을 잘 개어놓은 다자이가 손을 탁탁 털었다. 모자까지 주워다 주다니, 나 너무 상냥한 거 아냐? 평소 같으면 이때다 싶어 하면서 원반 던지기를 하듯 멀리 던져 버렸을 테지만, 오늘의 츄야는 상당히 수고했으니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자이에게 있어서 이 꼬맹이를 짊어지고 돌아갈 만한 의리는 전혀 없었다. 츄야는 작은 주제에 너무 무거우니까. 평소에도 무리인데 정신을 잃어 늘어진 상대를 들어..

[츄다자] 너의 모든 것이 싫다.

“생일 축하해, 츄야! 케이크! 여기 케이크가 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불쑥 들이밀어지는 흰 상자에 츄야는 반사적으로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까딱 잘못했다간 코를 부딪힐뻔했다. 작게 칫,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이건 분명 의도적이었다. 백 퍼센트 의도적이야. 설마 얼굴에 케이크를 상자 째로 뭉개버릴 생각이었냐. 이를 빠득 갈면서 눈앞의 인물을 강하게 노려보자, 보이는 것은 자기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이다.다자이 오사무. 전 파트너이자 지금은 적대 세력에 있는 놈이 왜 여기까지, 그것도 케이크를, 이런 날에 들고 온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사이에 축하? 축하아아? 미친 거 아냐?? “야, 꺼져.” “뭐야, 문전박대? 츄야 생일이라고 내가 이렇게 케..

[츄다자] 너의 체온

달이 예쁘네요. 하늘에 걸려있는 오늘따라 유난히 예뻐 보이는 달을 눈에 담으면서 누군가가 했던 유명한 말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예쁜 손톱 달이네. 까만 하늘에 손톱으로 쿡 하고 자국을 내놓은 것 같아. 이런 너무 평온하다 못해 태평한 생각과는 다르게, 다자이는 방금 전까지 입수 자살을 시도하다가 지금은 강물에 흐르는대로 몸을 맡기고 있던 중이었다.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을 누가 보면 자살이 아니라 단순히 물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아, 밤이라 역시 조금은 춥네. 그렇다 해도 이대로 체온을 뺏겨 죽으려면 며칠 동안 떠있어야 할 판이다. 음,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그전에 아마 쿠니키다군 한테 발견돼서 한대 맞고 일하러 가는 쪽이 더 빠르겠지... 그럴 바엔.몸을 일으켜 물 ..

[츄다자] 봄이 오고 있었다.

“다자이군 좀 수업에 제대로 나오게 해주세요.” 그 사람은 올해도 또 유급을 당할 생각인 건지. 저와 함께 졸업해주기만 해도 참 기쁘겠는데 말입니다. 걱정과 염려를 담아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하는 안고를 보면서 예쁘게 말린 계란말이를 입에 집어넣던 츄야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 “이런 얘기를 나카하라군에게 안 하면 누구에게 합니까?”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이 되묻는 안고의 반응에 츄야는 할 말이 없어졌다. 오다사쿠인지 뭔지 매번 그 놈이 애타게 찾는 선생 있잖아, 그 놈한테 말하던가. 하는 말은 이상하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입에 가져다 댄 팩 주스랑 같이 쭉 삼켜버렸다. 하고 싶은 말은 다 마쳤으니 전 그럼 이만, 하고 등을 돌리는 안고는 정말 미련없이 딱 할 말만 하고 ..

[츄다자]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너에게.

모처럼 만의 휴가에 왜 이놈 얼굴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은신처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쥐고 있던 나이프를, 누군지 확인하자마자 그냥 그어 버렸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짓는 나와 상반되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을 본 것 처럼 다자이가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아츠시 인지 뭔지 하는 꼬맹이한테 추천받고 보고 싶어져 빌려왔다며 손에 들고 있던 DVD 하나를 팔랑팔랑 흔든다.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걸 보느냐 물으니 “내가 사는 기숙사 방엔 플레이어가 없고~ 츄야 방엔 있잖아~? 게다가 이렇게 훌륭한 홈 시어터라니, 내가 써주지 않으면 누가 쓰겠어. 츄야는 쓰지도 않으면서 이런 좋은 걸 썩혀두고, 너무 낭비야. 이래서 마피아라는 놈들은.” 하고 헛소리를 지껄여 ..

[츄다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아 최악. 정말 최악이야. 이대론 그냥 자살 만이 답인 것 같다. 강에 뛰어들면 언제부턴가 줄줄 흐르고 있던 이 눈물도 가려지겠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내가 항상 입수 자살을 선호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별도 달도 떠있지 않은 깜깜한 밤. 난 그대로 조용히, 아무것도 비추지 않으면서 흐르는 검은 강에, 이번에야말로 삼켜져서 다시는 떠오르지 않길 바라며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 우리가 자게 된 건 사고였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보인 광경에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던 츄야의 얼굴을 지금도 난 잊지 못한다. 평소 내가 귀찮은 짓을 벌였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표정이였지. 그런 츄야는 처음 봤기 때문에 겉으론 티내지 않았지만 내심 놀랐었다.하지만 뭐야, 따지면 순결을 뺏긴 쪽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