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전력60분 27

[츄다자] 전력 60분 - 재촉

* 9월 1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분마요 탐정괴도 이벤트 일러스트를 보고 쓴 글이에요. 탐정님과 몰래 연애하던 옆집 꽃집 청년이 괴도?! 라는 설정이 너무너무 쓰고 싶어서 나온 스토리의 일부분입니다.(제멋대로 설정 붙이기의 결과물) 평소 즐겨 앉는 소파에 푹 기대앉아 고민에 빠진 지 거진 한 시간 째.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밖의 거리도 조용해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 부산스레 탐정사무소 안을 채웠다. 그 소리에 맞춰 의미없이 의자의 팔걸이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이렇게 앉아 있어 봤자 다른 답은 나오지 않는다. 하나뿐인 답은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츄야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단지 회피 그 이상 이하도 안된다는 것 또한 말이다.그 기다란 몸을 깔아..

[츄다자] 전력 60분 - 운명

* 6월 8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아, 정말 지쳤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것은 이쪽일지도 몰라. 바닥에 주저앉은 채 위를 올려다보면, 짙은 안개 때문인지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요코하마는 이능력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공간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해가 뜨고 아침이 오려면 정말 조금밖에 남지 않았겠지. 공간을 찢듯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츠시와 쿄카, 아쿠타가와가 힘내고 있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다자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떤 마지막이 오든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뿐. 정말 끝일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굉장히 후련해졌다. 다자이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뻗어있는 츄야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츄다자] 전력 60분 - 불안함

*15세 내용이 있습니다~! 가끔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유는 알지만,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 혀를 차며 모르는 척한다.몸속의 피와 신경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날뛰는 느낌이 들어 무심코 팔을, 목을, 가슴을 마구잡이로 쓸어내린다. 그리고 그럴 때면 항상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거리에서 생활할 때라면 모를까, 지금 츄야가 있는 곳은 보안이 철저한 포트마피아의 건물 안이다. 누군가가 몰래 지켜볼 수 있을 만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그렇게 느끼곤 했다.바람 소리를 귀신의 울음소리로 듣는다던가, 큰 나무의 그림자를 괴물로 착각하는 나이는 옛날에 지났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머리로는 멍청하고 꼴사납다고 생각하지만, 가슴 속의 ..

[츄다자] 전력 60분 - 데자뷰

* 3월 24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열어놓은 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계속 흩날리는 것이 귀찮은지 다자이는 술잔을 쥐지 않은 쪽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 귀 뒤로 넘겼다. 그 덕에 예쁘게 드러난 옆얼굴을 츄야는 흘큼흘큼 곁눈질로 바라본다. 차라리 대놓고 보면 좋을 텐데 그러기엔 묘하게 창피했다. 어쩐지 이 장면, 이 순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골똘히 생각에 빠진다. 이게 바로 데자뷰라는 그런건가? 아니면 바로 지금이라고 운명의 신이라는 놈이 등을 떠미는 것일지도 모르지. “…우리 사귈까?” 그렇게 입 밖으로 나온 것은 꺼내고 나면 별것 없는,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한 문장이었다. 그런데도 뱉고 나니 손안에서 식은땀이 나고 입안이 바싹 말랐다. 말..

[츄다자] 전력 60분 - 경계

* 2월 23일에 참여했던 글의 백업입니다. 원래 이렇게 오래 남아있을 생각이 아니었다. 술자리에서 적당히 어울리다가 상사가 빠지는 쪽이 부하들에게도 편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여기저기에서 나카하라씨, 나카하라씨 하고 이름이 불려 마시다 보니 빠질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아마 최근 간부로 승진된 덕분일 테다. 츄야 자체는 이상할 정도로 크게 감흥이 없었지만 말이다.오히려 휘하 부하들이 감격하면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으니 저놈들은 뭐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역시 아끼는 부하들의 진심 어린 축하는 기뻤다. 덕분에 술도 시간도 예상했던 것보다 과해져, 배웅을 뿌리치고 비틀비틀 걸어 돌아가던 도중에 결국 길가에 주저앉았다. 열이 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거칠게 훑어도 알딸딸함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츄다자] 전력 60분 - 악몽

오늘따라 유난히 눈을 뜨기가 힘들다. 알 수 없는 어지러움증을 느끼며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면 이미 온 방 안에 햇빛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커튼이 쳐져 있었을텐데? 아니, 그것보다도 언제 집에 와 어떻게 침대에 누웠는지에 대한 기억이 츄야의 머릿속에 없었다. 얼굴에 닿는 푹신한 베개의 감촉 또한 이상하게 낯설었다. 뭔가, 이상해. 눈을 가늘게 뜨고 빛무리 사이를 날아다니는 먼지들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곧바로 몸을 긴장으로 굳혔다. 등 뒤에서 들릴 리가 없는, 자신의 것이 아닌 숨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누구냐. 침대가 흔들리지 않게 몸을 돌려 돌아보면, 익숙하지만 있을 수 없는 얼굴이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절대 곁에서 잠들 일이 없는 파트너, 다자이 오사무의 얼굴이 말이다.――..

[츄다자] 전력 60분 - 체취

“네놈은 정말 냄새가 잘 안 붙는 것 같아.” 문득, 어느 날의 츄야가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게 언제였더라. 잠입을 위해 건물 안으로 츄야 혼자 엄청나게 더러운 환기구를 기어갔을 때였나? 아니면 상대편이 밀수한 물건을 찾기 위해 별수 없이 쓰레기장을 뒤져야 했을 때? 상황 자체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한가지 있었다. “정말? 그에 비해 츄야는 굉장한 냄새가 나네?” 네 특유의 체취 말이지.뒷말을 삼키고 놀리듯 말하면 츄야는 열 받는다는 듯이 나를 향해서 먼지를 털어냈다. 더러우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꺅꺅거리면 츄야는 다음번엔 네놈이 하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난 물론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상사의 말은 절대적이라며 얄밉게 웃어 보였을 뿐이었지만.내가 츄야를 인식하는 수단..

[츄다자] 전력 60분 - 립스틱

* 6월 23일에 조각글로 참여했던 전력의 백업입니다. 어라.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빨리 떨어진 입술에 아쉬움을 느끼며 다시 따라붙자, 거부하듯 츄야의 고개가 슬쩍 돌려진다. 무슨 일이지? 조금 차오른 숨을 고르면서 츄야의 얼굴을 가만 살피면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뜻을 담아 살근하게 츄야의 팔을 쓸어보고 깍지도 껴보지만 구겨진 인상은 풀릴 줄을 몰랐다. 흐음, 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을까. 이 단순 바보 민달팽이는 자기감정을 꽤 숨길 줄 모르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질 때도 종종 있었다. “왜에? 오늘 나랑 더는 키스하기 싫어?” 솔직히 지금은 좀 답답하네. 나는 츄야랑 키스, 더 많이 하고 싶으니까.결국 대답없이 ..

[츄다자] 전력 60분 - 방

*다자이 여체화(TS)주의! 오래된 먼지 냄새와 쿰쿰한 곰팡이냄새, 그리고 녹슨 쇠의 냄새. 날카롭게 뻗어 나가는 신경과 귀 안쪽으로 울리는 심장 소리가 머리를 아프게 한다. 조금만 늦었어도 밖에 있는 놈들과 마주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을 상황이었다. 창고의 잡동사니들과 함께 구겨져 숨을 삼키고 밖의 기척을 살핀다. 부실한 나무문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언제 들킬지 모르는 긴장감에 목구멍이 바싹 마른다.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익숙한 체향이 콧속으로 훅 들어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어 츄야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뭐가 됐든 무리다. 존나 무리라고. 품 안의 몸으로 신경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당연한 본능인 것이다. 그렇게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변명을 머릿속으로 애써 해야..

[츄다자] 전력 60분 - 술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원하던 것이 눈앞에 딱 떨어지는 날. 그럴 때면 내색하지는 않지만, 괜히 가슴 한구석 어딘가가 만족감으로 찌르르 울리는 것이다.그래, 지금처럼 말이지.신발을 벗으면서 방 안으로 들어오는 츄야를 아무 말 없이 가만 쳐다본다. 회색 티셔츠에 군데군데 찢어진 검은 스키니, 밑창이 약간 닳은 스니커. 매번 쓰는 모자는 여전히 빼놓지 않았지만, 평소와 다른 가벼운 차림에 저런 옷을 가지고 있었나 싶어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츄야가 여기까지 오다니 무슨 일이야?” “아? 술을 마시고 싶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하냐?” 갑자기 눈앞에 내밀어 지는 비닐봉투를 무심코 건네받자마자 아래로 훅 떨어지는 무게에 으아 소리를 냈다. 뭐야, 난 츄야처럼 무식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