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전력60분

[츄다자] 너의 체온

라덕 2017. 4. 23. 22:45

달이 예쁘네요. 

하늘에 걸려있는 오늘따라 유난히 예뻐 보이는 달을 눈에 담으면서 누군가가 했던 유명한 말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예쁜 손톱 달이네. 까만 하늘에 손톱으로 쿡 하고 자국을 내놓은 것 같아. 

이런 너무 평온하다 못해 태평한 생각과는 다르게, 다자이는 방금 전까지 입수 자살을 시도하다가 지금은 강물에 흐르는대로 몸을 맡기고 있던 중이었다.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을 누가 보면 자살이 아니라 단순히 물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아, 밤이라 역시 조금은 춥네. 그렇다 해도 이대로 체온을 뺏겨 죽으려면 며칠 동안 떠있어야 할 판이다. 음,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그전에 아마 쿠니키다군 한테 발견돼서 한대 맞고 일하러 가는 쪽이 더 빠르겠지... 그럴 바엔.

몸을 일으켜 물 밖으로 걸어 나오자 단숨에 몸이 무거워졌다. 조금 전까진 느끼지 못했던 몸의 무게와 더불어 중력을 이기지 못한 물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구두 안에도 물이 차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아래에서 질퍽 거린다. 다자이는 물은 좋아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 느낌들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음......... 츄야한테나 갈까.”


오늘은 달이 예쁘니까 말이야. 누가 들으면 사랑을 하고 있구나, 라고 되물을 이유를 붙이며 옮기는 걸음걸음 마른 바닥에 물 자국이 남았다. 아까 낮에 아츠시군이 쿄카에게 읽어주던 헨젤과 그레텔처럼, 나중에 다시 강으로 돌아오기 위한 흔적 남기기일까. 나중에 없어진다는 점에선 빵 조각이랑 똑같네. 다자이는 아무래도 좋을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웃었다.


 

***

 


하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한숨을 쉬면서 츄야는 생각했다. 이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집에 돌아와 현관을 열자마자 보이는 흥건한 물 자국과 그 중심에 있는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진 구두, 그리고 걸어간 흔적을 남기듯 물을 먹고 잔뜩 구겨져 덩어리 채로 벗어 던져진 옷가지들이 욕실 문 앞까지 점점이 이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츄야는 피곤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눈꺼풀 위를 꾹 눌렀다. 왜 매번 뒤처리 담당은 나지?

샤워기의 물소리가 아니라 작게 참방이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놈 방금 전까지 물에 들어갔다 왔으면서 설마 여기서 또 자살 시도 같은 건 안 하겠지...? 나중에 너무 밖으로 안 나온다 싶으면 들어가 보자고 생각했다. 평범하게 목욕 중이라면 그거대로 다행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제 꽃도 피는 봄이라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니까. 나중에 감기라도 걸려 골골거리면서 또 자신에게 붙어 오는건 사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복도에 떨어져 있던 옷가지들을 주워 세탁기에 넣고 여벌 옷을 욕실 문 앞에 뒀다. 자신이 입던 옷이지만 제대로 세탁된 옷이고, 속옷은 새것이니까 불만은 없겠지. 대충 정리 한 후에 주방으로 가 냄비에 우유를 중탕으로 데우고 있으면 저쪽에서 부터 차박차박 맨발이 바닥에 맞닿으며 나는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츄-야, 앞에 둔 옷 나한텐 너무 짧은데―.”


“그런 걸로 불만을 가질 거면 나한테 오질 말아야지.”


상의는 그렇다치고 껑충 올라가 발목이 훤히 보이는 바지에 괜히 민망해진 츄야는 흥, 코웃음 치면서 대답하다 물기를 제대로 훔치지 않은 다자이 꼴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제대로 훔치지 못한 물기는 머리카락을 타고 뚝뚝 바닥에 작은 웅덩이들을 만들어 댄다.


“야, 머리 제대로 말리고 나와야 할 거 아냐.”


“으...귀찮아....”


“네놈 그러다 감기 걸린다?”


그런 츄야의 반응을 무시하면서 츄야의 뒤로 차박차박 걸어온 다자이가 어깨너머로 냄비의 내용물을 보면서 우유?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우유는 나보단 츄야가 많이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좀 안 닥칠래?!”


“후후, 나한테 우유 줄 거 이왕이면 깔루아 밀크로 만들어 줘.”


츄야네 집에 저번에 보니까 리큐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면서 방글 웃는 다자이의 얼굴이 목욕을 하고 나와서인지 평소보다 발그레하다. 머리도 젖어있으니 어쩐지 의도치 않게 색정적으로 보여 츄야는 시선을 다시 냄비 안으로 돌렸다. 더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가슴 한 쪽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어 괜히 헛기침을 했다.


“지금 만들어서 갈 테니까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어. 머리 말려줄게.”


“앗, 정말? 너무 좋아.”


등 뒤에서 순수하게 기쁜 듯이 말하는 다자이에게 그래, 하고 대답하면서 입가를 손등으로 꾹 눌렀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아. 다자이의 ‘좋아’는 그냥 단순히 지금 상황에 대한 것뿐이겠지만, 듣는 입장에선 그러고 싶지 않아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어 버린다. 정말, 심장에 너무 안 좋아.

원하는 대로 깔루아를 섞은 우유를 머그컵에 들고 가자 시키는 대로 얌전히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다자이가 두 손으로 컵을 받으면서 고마워, 하고 말갛게 웃었다. 젠장, 이놈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엽지? 나 놀리나? 어디서 뭐 잘못 먹고 나한테 온 거 아냐?


“머리 말리는거 너무 귀찮아.”


곱슬머리는 잘 마르지도 않으니까 힘들어. 난 숱도 많으니까 말야아....드라이기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오는 츄야에게 앉으라는 듯이 다자이가 자신의 옆을 손으로 툭툭 치다가 아, 하고 러그가 깔려있는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은 츄야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컵의 내용물을 홀짝인다.


“오늘 왠일로 이렇게 고분고분해.”


어깨에 걸쳐져 있던 수건으로 가볍게 머리카락을 털어주는 츄야에게 머리를 맡기면서 가만히 눈을 굴리던 다자이가, 고개를 좀 더 뒤로 젖혀 츄야와 눈을 마주치면서 헤실 웃었다.


“음... 달이 예뻐서?”


“......또 뭔 개소리를 하고 앉아 있냐.”


“정말이지, 츄야... 뇌까지 근육이 되어버린 건 이제 어쩔 수 없는 것 같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다자이의 머리에 이 새끼가 싶어서 딱밤을 먹였다. 아야, 너무하네. 진심이였는데, 볼에 바람을 불어넣고 작게 중얼거리는 다자이를 무시하고 드라이기의 전원을 켰다.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머리카락일 텐데도 부드럽게 손가락 사이로 휘감기는 감촉이 좋았다. 지금 다자이에게 자신이 쓰는 것과 같은 샴푸 냄새가 난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다시 가슴 한켠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라 이를 악물고 머리를 바람에 따라 흐트러트렸다. 집중해서 빨리하고 끝내자.


“누가 머리 만져주는 거 되게 기분 좋은 거구나.... 많이 만져주게, 츄야.”


안돼, 난 이제 한계다.

슬슬 손바닥에 머리를 부비면서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구는 다자이의 모습에, 츄야는 결국 참지 못하고 드라이기를 내팽개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난 씻으러 갈거니까, 그거 다 마시면 적당히 두고 졸리면 자던지 말던지 맘대로 해.”


“어 뭐야~ 나 이렇게 두고 가는거야?”


“머리는 다 말랐잖냐.”


뒤에서 계속해서 항의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츄야는 등을 돌려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



머리, 좀 더 만져줬으면 했는데.

다자이는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면서 방금 전까지 뒤에 있던 체온이 사라지니 조금 허전하고 추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머그 안에 남아 있던 깔루아 밀크도 깔끔하게 다 비웠다. 보통 이런 단 술은 잘 먹지 않는데, 오늘은 마셔도 괜찮은 기분이었지. 오랜만에 마시니까 맛있었다.


“츄야가 만들어줘서 일지도 모르겠네.”


오늘은 잔뜩 어리광 부리고 싶은 기분이였으니까. 이렇게 입에 단걸 먹지 않아도 충분히 달콤한 것을 먹어치운 기분이 들기도 해. 차박하게 차오르는 충만한 기분에 후후 웃으며 무릎을 가슴께로 꼭 끌어안았다.


 

***



아, 진짜 놀랐다.

알몸으로 샤워기의 물 줄기 아래에서 쭈그리고 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츄야는 더 이상 빨개질 수 없을 정도로 빨개져 있었다. 다자이가 아무리 비유라고 해도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줄은 몰랐다. 어물쩍 넘겨버렸지만 이래 봬도 츄야도 다자이와 같이 수령 아래에서 공부한 몸이다. 몸을 쓰는 쪽이 성에 맞지만 이런저런 상식이나 지식이 부족한 바보는 아니었다. 

이 미친놈이, 갑자기 달 타령을 하고 있어!!!!!!! 

집에 혼자 있었다면 마음껏 소리질러 버렸을지도 모른다. 사실, 다자이도 이런 츄야를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둘 다 모르는 척을 하고 있을 뿐이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거실로 돌아오자, 아까 그 자리에서 다자이가 무릎을 안고 있는 자세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츄야는 그대로 멈춰서서 아아―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아, 젠장. 귀여워. 귀여워. 이놈 이렇게 귀여울 필요가 있나.

 

“야, 들어가서 자.”

 

어깨를 잡고 슬쩍 흔들어 보지만 일어날 기미는 전혀 안 보인다. 미치겠네, 신이란게 정말 있다면 오늘 나한테 이러면 안되는거 아닐까. 이렇게 둘 수는 없으니 결국 몸을 끌어안고 침실로 옮겨주기로 했다. 이놈 정도 들어 옮기는건 일도 아니지만, 오늘 너무 평소답지 않게 귀엽게 구니까 미치겠다는 생각을 백번쯤 하게된다. 누가 보면 깨지는 무언가를 다루는 줄 알 정도로 조심스럽게 이불까지 덮어주고는 어쩔까 하다가 옆에 같이 누웠다. 집주인이 소파로 가서 자는 것도 웃기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츄야는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진작 소파로 가는건데, 하고 후회했다. 잠결에 따뜻한 곳을 찾던 다자이가, 츄야에게 붙어왔으니까.

 

“츄야 냄새....”


잠결에 웅얼거리면서 허리를 끌어안는 다자이 덕분에 심장이 크게 덜컥거렸다. 스스로 심장에 중력 가속도라도 붙인 기분이다.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다시 색색 잠드는 걸 보면서 갈 곳 잃은 손을 어찌할 줄 모르다 결국 그 어깨를 끌어안았다. 다자이가 지금 자고 있어서 다행이다. 분명 엄청나게 형편없는 얼굴을 하고 있을 테니까. 얼굴을 보이면 평생 놀림당하겠지. 제발 지금 뛰는 심장소리가 너무 크지 않길 바라면서 다자이의 앞머리에 입술을 부볐다.


"그래, 오늘 달이 진짜 빌어먹게 예쁘긴 예쁘네."



***

주간 츄다자 참여글 >주제 :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