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전력60분

[츄다자]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너에게.

라덕 2017. 4. 2. 00:05


모처럼 만의 휴가에 왜 이놈 얼굴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은신처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쥐고 있던 나이프를, 누군지 확인하자마자 그냥 그어 버렸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짓는 나와 상반되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을 본 것 처럼 다자이가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아츠시 인지 뭔지 하는 꼬맹이한테 추천받고 보고 싶어져 빌려왔다며 손에 들고 있던 DVD 하나를 팔랑팔랑 흔든다.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걸 보느냐 물으니 “내가 사는 기숙사 방엔 플레이어가 없고~ 츄야 방엔 있잖아~? 게다가 이렇게 훌륭한 홈 시어터라니, 내가 써주지 않으면 누가 쓰겠어. 츄야는 쓰지도 않으면서 이런 좋은 걸 썩혀두고, 너무 낭비야. 이래서 마피아라는 놈들은.” 하고 헛소리를 지껄여 댄다. 어이가 없어져서 대체 어디까지 하나 냅둬 보기로 했다.



“내가 쉬는 날은 어떻게 알고 기어 왔냐. 게다가 하필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고.”


“으─응. 비─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가져온 DVD를 플레이어에 넣고 소파 위에 드러 누워 리모콘을 만지작거린다. 적어도 코트 정도는 벗고 뒹굴어 주면 좋겠는데. 이놈은 자신의 몸 가짐에 전혀 신경 쓰질 않아서, 보고 있자면 오히려 신경 쓰는 쪽이 지는 기분이다. 

이제 다자이는 흐흥흐흥 콧노래를 부르면서 패키지 뒷부분에 써있는 줄거리를 읽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 서서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가 몸 아래에서 이리저리 구겨져 주름이 지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 결국 직접 가서 벗겨줬다. 그래, 역시 신경 쓰는 쪽이 지는 게 맞는 거지.

우후후, 하고 나른하게 웃으면서 벗기는 대로 팔을 빼고 몸을 뒤집는 게 얄밉기 짝이 없다. 분명 내가 신경 쓰고 있단 것을 빤히 알던 눈치다. 시중 받는 게 익숙한 그 모습에 은근히 속이 뒤집히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여기가 네놈 집이냐? 어?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듯 팔다리를 쭉 펴던 다자이가 다시 소파에 늘어진다. 이놈이랑 있으면 괜히 한숨만 늘어난다. 

벗긴 코트를 옷걸이에 잘 걸어두고 술이나 마시자 싶어 주방으로 향했다. 가볍게 얼음과 물을 넣어 희석 시킨 보드카를 두 잔 만들어 소파로 돌아오자, 이미 화면엔 영화 내용이 흐르고 있었다.

DVD 자체는 아마 그저 그런 내용의 로맨스 영화였던 것 같다. 도무지 취향에 맞질 않아서 제대로 보지 않았으니 기억에 크게 남지도 않아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아, 좀... 달라붙지 말라고...... 야! 네놈, 지금 어딜 만지냐?!”


“츄우야─. 이런 걸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순진하게 굴 나이는 옛─날에 지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게다가 이미 이런 거 저런 거 다 본 사이인데 부끄러워하기는, 하고 뒷덜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능글맞게 말하며 몸을 더듬던 다자이가 무릎베개를 하듯 내 허벅지 위에 머리를 얹었다.



“아~ 베개가 너무 높은데, 좀 낮춰주면 안 될까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미친놈아.”


“정말이지, 꼬맹이 주제에 어쩜 이렇게 근육질이니? 너무 딱딱해서 베는 맛이 없잖아.”



그렇게 투덜 거리면서도 얹혀진 머리는 치워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꾸물꾸물 붙어오더니, 달라붙지 말라고 말해도 들은 척도 않고 계속 달라붙고, 결국엔 내 허벅지 위에 머리를 얹은 채로 누워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놈은 정말 사람 말을 제대로 들어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 아래로 굴려 버릴까 고민했지만, 그렇게 하는 건 너무 유치한 짓 같아서 관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휘둘리기만 하는 것 같아서 짜증 난다. 부글 거리는 속 안으로 들이붓는 술맛이 오늘따라 별로라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화면을 응시했다. 영화 속에선 한창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 준다는 말 같은 거, 하나도 안 믿어.”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방 안에 갑자기 툭 떨구듯 끼어든 혼잣말에, 허벅지 위에 얹혀진 머리통을 흘큼 내려다봤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는 이쪽으로써는 머리카락에 가려진 다자이의 표정이 제대로 잘 보이지 않는다. 막연하게 지금 짓고 있을 표정을 상상했지만 제대로 가늠이 되질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가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울림을 가지고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부슬하게 뻗쳐있는 뒤통수가 왠지 모르게 푹 젖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심코 손을 뻗어 쓰다듬을 뻔하다가 닿기 전에 손을 꾹 말아 쥔다. 

때로는 알고도 가만히 있어야 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



“난 그런 말 안 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은 건 그 때문 이였을까. 다자이는 내 말에 딱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방금 한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이놈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피아로 살아가는 이상, 미래 같은 걸 생각하고 속삭일 정도로 물러 터지고 희망찬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



하물며 마피아 간부다. 가지고 있는 이능력, 신체 능력도 싸움 특화. 나 자신도 싸움을 즐기는 성격이니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제 비명횡사할지 모르는 위치다. 

그러니까 지키지 못할, 나중에 가서 뒤끝이 남을 말 따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줄 수는 있겠지. 그러니까 지금이라는 이 순간만큼은, 곁에 있어줄 수 있다고.”



애초에 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 얼굴에 바로 티가 나니까. 그래서 파트너 일 때 협상 관련은 매번 다자이가 전면적으로 나서서 했었다. 물론 이놈의 화술이 천재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자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가만히, 잠들어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히 누워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침묵의 시간은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 않았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가고 화면이 검게 변하자 다자이가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봤기 때문이다. 입가엔 의미가 분명한 야살스러운 미소를 건 채로 말이다.



“하자, 츄야.”


“뭐?”


“갑자기 되게... 하고 싶어졌어.”



영화도 다 봤고, 밤은 아직 기니까 말야, 라고 속삭이듯 말하면서 붕대가 감긴 두 팔이 뻗어 나와 양 볼을 감싸 쥔다. 

마치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어쩐지 가슴이 간질 거리는 애틋함을 담아서.

하지만 조심스러운 그 손길과는 상반되게, 뭔 헛소리냐는 불만을 말하려 벌어진 입 위를 집어삼키듯 입술이 겹쳐졌다. 흡사 잡아먹히는 기분이다. 

반사적으로 뿌리치려다가, 입술이 닿기 전에 잠깐 보였던 그 눈빛이, 여러 가지 색으로 버무려져 담뿍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아아, 정말 이놈은, 왜 이렇게 꼬여있는 걸까.

처음 알았을 때 부터 이랬다. 마피아라는 집단의 특성상 꾸며 댄 모습만 보이다 보니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보이게 하는 것에 서툴고 서툴어서, 끝내는 진심을 내보이게 되면 내쳐질까 두려워 모든 것을 속으로 감춘다. 

그러다가 가끔 이렇게 한번씩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격하게 몸을 붙여올 때가 있는데, 이게 바로 다자이 오사무식 직접적인 감정 표현 법인 것이다. 

정말 여전히 복잡한 놈이다. 이놈은 아마 내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이해하고 있단 것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항의하려던 말을 삼키고 입 안으로 들어온 혀에 같이 혀를 얽히게 하면서, 아까전에는 손대지 못했던 뒷머리를 달래주듯이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 준다는 말 같은 거, 하나도 안 믿어.”



무심코 츄야에게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음음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다. 난 아마 평생 이럴 거야. 옆에 계속 있어줄 것 같던 사람도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었으니까. 

나에게 남아 있는 흔적이라곤 남들에게 보이지도 않는, 마음속에 있는 커다랗고 무수한 흠 정도다. 게다가 난 그 흠을 감추거나 없는 취급하기보단, 자국을 따라 손가락으로 슬슬 쓸어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한번 깨져서 금이 간 것을 다시 붙인다고 해서 전이랑 똑같은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는 것인데, 그런데도 깨지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사람이란 참으로 멍청하고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기준에 나 자신도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참으로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야.

아마 츄야가 안다면 네놈에게 그렇게 섬세한 면이 있었냐고 분명히 코웃음 치면서 비웃을 것이다. 그러면 난 혼자 죽는 게 외로워 동반자살을 지향하는 나에게 너무한 거 아냐? 하고 샐쭉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테지.


매끄러운 시트에 머리를 부비면서 옆에 누워 잠들어 있는 조용한 옆얼굴을 바라봤다. 너도 이렇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나름 봐줄 만한 얼굴인데, 츄야.

그러니까, 난 곁에 있어주겠다는 그 말을 믿지 않아. 의식하지 않고 있더라도 어느샌가 나한테 스며들어 버리는 달콤한 독 같은 거니까.

아무렇게나 떨궈져 있던 손에 조심조심 내 손을 끼워 깍지 끼듯 맞잡았다. 네 손을 놓게 된다면 저번처럼 내가 먼저 놓아버릴 거야. 이기적이라고 생각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에게. 



***

주간 츄다자 참여 글 >주제 :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