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우면서도 조용한 밤이었다.
안개가 마을을 감싸, 모든것을 없앴다. 사람도, 소리도, 시야도, 활발히 살아 움직이는 것은 이능력들뿐.
방금까지 한바탕 소란스럽게 날뛰던 이세계(異世界)생물도 사라져, 안개와 함께 고요가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것도 물론 잠깐의 일이겠지만.
“손가락 하나…까딱할 힘도…없어….”
인간 같지 않은 힘을 보이고 자신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던 작은 꼬마가 눈앞에서 꼬꾸라졌다. 다리 사이에서 의식을 잃고 있는 츄야의 곱슬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만 쓰다듬고 있자니 후후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무신경하다고 해도, 츄야는 어떻게 이런 자세로 정신을 놓을 수 있지?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는데 말이야.
“츄야. 츄~야~.”
좀 일어나 보라고 다자이가 츄야의 볼을 손가락으로 쭉쭉 늘리면서 꼬집어대면 느릿하게 뜨인 눈꺼풀 아래로 짜증 섞인 눈동자가 시선을 맞춰온다.
“…왜.”
“나 말이지이. 죽었다 살아나서 그런가? 온몸의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어서―.”
그래서 이러고 있으니까, 무진장 야한 짓이 하고 싶어졌어.
지금 당장.
고개를 숙여 츄야의 귓가에 살근하게 속삭이면 이를 악무는 턱이 시선 끝으로 보였다.
“너…내가 방금 한 말, 듣긴 했냐?”
“애초에 이런 자세로 떨어진 츄야가 잘못이지. 책임져 줘야 하는 게 아닐까아?”
그제야 자세를 바꾸려 움직이는 츄야의 뒷머리를 다자이가 꾹 누르고 몸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면, 눈동자만을 들어 올려 노려봐온다.
물론 원하는 것을 해줄 때까지 다자이는 손을 뗄 생각이 없었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의 츄야라면 다자이라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아예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실실 웃는 다자이를 못마땅하게 보던 츄야는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지는, 이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동참해 주기로 했다는 뜻을 담은 한숨이다.
항복 신호를 받아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한숨 하나로 몸 안 곳곳에서 잠자고 있던 스위치가 한순간에 켜졌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차르르 올라오는 이 느낌. 누군가는 소름과도 비슷하다고 할만한 감각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선다.
이 어마무시하고 강한 생명체를 손안에서 원하는 대로 굴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본능적으로 흥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
눈앞에서 크게 오르내리는 하얗고 판판한 가슴을 바라보다가 곧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할딱이는 숨소리 사이로 두 사람분의 열기로 데워지고 습해진 공기가 가라앉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둘 다 섹스 하고 나서까지 쨍알거리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츄야는 사용한 콘돔의 입구를 묶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사이드 테이블 위에 있던 물병으로 마른 목을 축였다. 그러니 옆에 둔 담배를 빼 문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 움직임에 다자이의 시선이 따라왔지만, 직접적인 야유나 타박이 나오지는 않았다.
라이터의 작은 불씨가 옮겨붙으면 곧 새하얀 연기가 훅 피어났다가 사라진다. 천천히 슬렁이며 사라지는 연기의 끝자락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다자이가 입을 열었다.
“…츄야, 그…….”
하지만 의도와는 다른 잔뜩 쉰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바로 입을 다문다.
조금 전까지 실컷 목을 쓰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나.
츄야가 낄낄거리며 물병을 건네주자, 다자이는 눈을 가늘게 뜨는 것으로만 불만을 표현하곤 순순히 물을 받아 목 안으로 넘긴다. 물을 삼키며 매끄럽게 움직이는 목울대를 보면서 츄야도 담배를 한 모금 더 깊게 빨아 삼켰다.
아아, 저 튀어나온 부분을 인정사정없이 물어뜯고 싶다.
그 전에 저 부스스한 뒷덜미를 잡아채 물을 머금고 있는 입술에 키스하고 싶다.
우습게도 아직 열을 가지고 있는 피부가 한참 모자라다고 외치고 있었다. 뱃속에 집어넣는 허기는 당장에라도 채울 수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것과 다른 굶주림과 갈증이었다.
이럴 때 섹스를 하면 어김없이 다자이의 몸 이곳저곳엔 츄야가 남긴 이빨 자국들이 점점이 남았다. 이건 저 망할 놈을 내 안으로 씹어 삼키고 싶다는 무의식의 반증인 것일까?
유난히 지독하게 물어뜯어 대는 날이면 다자이는 일부러 츄야에게 자신의 몸에 붕대를 감게 시켰다. 그리곤 천천히 덮이는 자국들을 보면서 누가 개 아니랄까 봐, 하고 야유하며 웃었지.
―아, 큰일 났다. 지금 당장 물어뜯고 싶어졌어.
하지만 섹스는 방금 끝낸 후고, 다자이는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걸 어쩐다. 솟아오르는 욕구에 츄야는 괜히 멀쩡한 담배 필터만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이렇게 된거 한대 피고 화장실에 가서 적당히 빼고 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