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같이 작은 손을 흔들며 순식간에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꼬마를 보면서 츄야는 어이없어하며 서 있다가 순간 멈칫했다. 자신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방금까지 없던 붉은색 실 한 가닥이 묶여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까딱여 보지만 뭔가 묶인 것 같은 느낌은 없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 뭘까. 일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흘러가 마치 뭔가에 홀린 기분이다.
그러다 문득 예전 다자이와 아직 파트너 관계일 때의 일이 떠올랐다. 대기시간에 다자이가 잡지를 잃다가 재미있는 게 있다며 호들갑스럽게 말해줬던 이야기. 분명 운명의 붉은 실이니 뭐니 하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릴 정도의 이야기였다.
「운명의 사람이 보일 거야.」
그렇게 가볍게 넘길 게 아니었는데. 만약 저 꼬마가 제대로 자신을 없애기 위한 암살자였다면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지도 못했겠지.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긴장이 풀렸던 걸까. 우선 이것 외엔 크게 몸 상태가 이상해진다든가 하는 일은 없는 모양이지만, 심하게 방심하고 있던 자기 자신을 속으로 질책하면서 실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자신의 손가락에서 시작되어 발끝까지 주욱 늘어선 붉은 실 한 가닥. 멀어질수록 희미해져 결국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끝엔 과연 누가 있을까.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생각에 츄야는 어이가 없어져 헛웃음을 지었다. 분명 이것은 어린애의 장난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분명 그렇게 별것 아닌 일이 분명한데도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선 머릿속을 마음대로 떠도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기 위해 벽에 기대서서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곧 불이 붙은 담배를 물고 숨을 크게 들이 내쉬었다. 뿌연 연기가 주변에 모였다 천천히 흩어진다.
애초에 바로 다자이를 생각하는 것도 웃기지만 만약 이 끝에 있는 게 다자이가 아니라면 어쩔까, 그리고 다자이의 상대가 내가 아니라면?
복잡한 머릿속에서 단 하나 명확히 떠오르는 질문에 담배 끝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침묵을 깨고 있었다.
그럼ㅡ
그 상대방을 죽여버리자.
누구에게 뻗어 나가는지 모를 살기와 함께 어둠 속에서 안광이 서늘하게 빛났다. 돌아갈 곳을 없애고, 이번에야말로 계속해서 옆에 두면ㅡ 괜찮지 않을까. 그놈 옆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니까.
원하는 것은 스스로 손에 쥐고 절대 놓지 않는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길에서 굴러가며 배워 왔다. 츄야의 근본적인 삶의 방식이란 그런 것이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고, 영역 안에 들여놓은 이상은 내보내지 않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었던 것이었다.
사실 그놈의 상대는 이미 죽어버렸을 가능성도 있지. 기억 너머에 있는 붉은 머리를 가진 키 큰 남자를 생각하면서 짧게 혀를 차고 피고 있던 담배를 벽에 비벼껐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운명의 상대임을 깨닫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 것은 동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은 조금 더 잔혹하고 잔인하며, 부질없는 것이다.
물론 다자이의 상대가 츄야가 아니라면 츄야 또한 다자이가 아니겠지. 그 정도는 괜찮다. 누가 뭐라고 해도 츄야는 다자이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떨어지고 싶어하는 것도 관계를 계속해서 변칙적으로 만드는 것도 다자이었다.
(좀 어릴때의, 아직 파트너 관계일때의 이야기.)
“너는 정말…생긴 거랑 안 어울리게 노네.”
“아앙?”
어이없는 트집에 고개를 들면 신물이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다자이가 있었다.
흠. 마실 것은 한잔도 주문하지 않고 홀케이크 하나만 포크로 퍼먹고 있는 자신에게 질린 걸 수도 있긴 하겠다. 깨달았을 때는 어느새 그 큰 케이크의 반 이상이 츄야의 위 속으로 사라진 상태이기도 하고 말이다.
“뭐야, 먹고 싶었냐? 진작 말하지.”
“아니. 전혀. 혼자서 실~컷 드세요.”
다자이는 진하게 우린 홍차에 생크림을 부어 넣으며 바로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츄야는 그런 다자이의 눈앞에 크림과 딸기를 포크로 크게 찍어 쑥 내밀었다. 그리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라 동그래진 다자이의 눈을 보면서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물론 무심코 해버린 이 행동에 츄야 자신도 조금 부끄러워졌기 때문이지만.
“먹을래?”
“싫어. 츄야나 먹어.”
“이거 맛있는데. 네놈도 딸기나 크림은 좋아하잖아?”
“츄야랑 같은 포크를 쓰면서까지 먹고 싶진 않아.”
딱 잘라 거절하며 찻잔을 집어 올리는 다자이를 보면서 츄야는 갈 곳 잃은 딸기를 자신의 입안으로 보내기로 했다. 두 번 권할 의리는 없었다. 따지면 케이크 위의 소중한 딸기를 줬는데도 싫단 놈이 이상한 거니까.
입안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크림과 이에 짓이겨진 과육 덩어리가 침과 섞여 질척 흐물해진다.
진짜 맛있는데 말이지. 흘끔 다시 다자이 쪽을 보면, 눈을 내리깔고 테이블 위의 잡지를 읽으며 밀크티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따라 묘하게 계속 눈길이 가는 옆모습에서 자연스레 시선을 옮긴다. 잔 손잡이를 쥔 가늘고 긴 손가락, 찻잔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 그 입술을 핥듯 조금 나왔다가 들어가는 붉은 혀끝. 이상하게 두드러지는 것들을 멍하니 보다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동화 인어공주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이게 뭔…….”
어라, 예상보다 많이 놀라는걸. 입까지 벌리고 쳐다보는 츄야의 얼빠진 얼굴이 정말 멍청해 보여서 실컷 놀려주고 싶었지만 이해해주기로 했다. 지금 이것은 누가 봐도 놀랄만한 광경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자이는 흘끗 물속에 잠겨있는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다본다. 놀랍게도 그곳엔 원래 당연히 있을 하얗고 매끈한 다리가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비늘이 잔뜩 붙어있는 거대한 어류의 꼬리가 달려 있었다. 확실하게 무슨 색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오묘한 청색의 비늘들이 욕실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차르륵 반짝거렸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한 생물을 보고 인어라고 말하겠지.
“……정말 고등어라도 된 거야?”
“너무해! 정말 실례되는 말을 하잖아?!”
불만을 담아 수면을 커다란 꼬리로 팡팡 쳐내면 츄야에게 물이 잔뜩 튀어 올랐다. 츄야는 그 물을 고스란히 맞고서도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자신의 집 안, 쓸데없이 커다란 욕실에 마찬가지로 커다란 욕조 안을 유유히 노니는 커다란 인어가 눈앞에 있으면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인어의 정체는 죽여도 시원찮을 전 파트너다. 어쩐지 홀가분해 보이는 다자이의 모습 또한 츄야에게 혼란스러움을 가중되게 하는 모양이었다.
“못 본 사이에 또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거야? 이능력이 안 통하는 네놈한테 말이야.”
“그러니까 아까 말했잖아? 저주에 걸렸다고 말이야.”
정확히는 저번 하룻밤을 함께 보냈던 여자분한테 말이지. 웃으면서 말하는 것에 비해서 내용은 전혀 웃음이 나올만한 것이 아니었다.
“저주라고?”
“응. 물거품이 되는 저주. 덕분에 정말 인어공주…아니 왕자님이라도 된 기분인걸.“
다자이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같이 죽어주지 않겠느냐 물어보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같은 일이라, 이번에도 어김없이 술집에서 만난 여자에게 권유하듯 물어봤을 뿐이었다.
그 후, 같이 술집을 나와 근처 호텔에 들어가 약을 받았다. 예쁜 유리병에 든 파란색의 액체였지.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다자이에게 그걸 마셔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 준비성이 철저한 여성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당연히 기쁘게 마시고 이 꼴이지.”
뭘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다자이를 보면서 츄야는 한숨을 쉬면서 본인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뭐야, 그 반응 기분 나빠. 툴툴거리고 있으면 츄야가 조심스레 물속으로 손을 뻗어, 다자이의 꼬리의 표면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비늘 하나하나에 느껴지는 뜨겁고 이질적인 촉감. 이 기괴한 것은 확실하게 내 몸의 일부가 맞았다.
그 약을 마시고 다자이가 눈을 떴을 때, 함께 있던 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차피 다자이도 하룻밤 상대에게 끝까지 남아줄 예의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었다. 하지만 몸을 씻고 호텔을 나갈까 싶었던 와중에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얼마나 놀랐었는지 츄야는 모를 거야.”
“시발, 모르긴. 내가 지금 얼마나 놀랐는지 아마 네놈도 모를 거다…. 그래서, 저주를 풀 방법은?”
“없어.”
“허? 왜 그렇게 확실히 단정 지어서 말하냐?”
“음…. 불가능하거든.”
곤란한 듯 우물거리는 다자이를 보고 츄야는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본다. 하지만 정말인걸. 있다면 있지만, 다자이의 경우로 따지면 없는 것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